솔라+시멘트 가든+첫사랑 마지막 의식 Smoking


솔라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문학동네


2010년 작. 이언 매큐언이 늙어가고 있다. (당연하지.) 사회 규범과 대비되는 본성 추구는 줄고 냉소가 늘었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시니시즘에 묶이는 두 가지이기도 하구나. 대단한 영웅 납시오, 격의 노벨상 수상자 이론물리학자가 등장하는데 아뿔싸, 천하의 꼰대다. 태양열solar, 광합성, ‘세상을 구하기’(419)가 허울이라면 이면에는 비양심과 비도덕을 두루 갖췄다. 꼰대캐릭 마이클 비어드를 어쩌지……. 곰곰 생각하다보니 매큐언이 ‘늙은’ 게 아니라 초기 ‘매커버Macabre’와 비슷한 가운데 더 능글맞아졌다고 하고 싶어진다. 욕망과 본능을 좇다가 사회규범을 덜컥 마주치는 걸 보면. 달리 말해,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근친상간을 저지른 꿈에서 깨어나 보니 레알 경찰이 도착해 있는 노릇. 늙었다는 표현은 다른 말로, 노련하다, 훨씬 덜 거칠고 세련되었다, 로 바꿔야겠다.


“ㅇㅇㅇ, 난 당신을 증오합니다. 내게 거짓말을 했고 도둑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감옥에 있는 건 보고 싶지 않군요. 그러니 영국엔 가지 마요. 범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곳으로 가요.”
“다른 할말은?”
“없어요. 이건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에요. 그러니 엿이나 먹으라고요.” 전화가 끊겼다. (439)




시멘트 가든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손홍기 옮김/열음사



어느 더운 날 오후, 따분해하던 나는 사람이 살지 않는 어느 조립식 주택의 정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잔디와 잡초 사이에서 쇠망치 하나를 발견했다. (65, 강조는 나)


『솔라』의 쇠망치가 아닌가했다. 『솔라』에서 마이클은 누군가의 사망 현장을 조작하고, 범행도구로 여겨지기를 바라는 망치를 ‘담장 근처 관목 숲에’(『솔라』154) 던져 놓는다. 2010년 『솔라』의 마이클이 던져 놓은 망치를 1978년 『시멘트 가든』의 잭이 발견하다. 마이클의 저택도 잭의 황량한 이웃 철거주택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멋진 타임슬립이다. 소품 연결고리 때문이었을까, 『솔라』는 『시멘트 가든』과 꽤 닮았다고 느꼈다.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치외 법권에서 지내다가 갑작스레 법권과 맞닥뜨리게 되는 점으로 보자면 말이다. 하기야, 30여 년 동안 이언 매큐언이 어디 갔겠나. 젊고 철없는 욕망이 노련하고 능글맞은 처신으로 바뀌었을 뿐. 같은 작가를 한 세대 간극으로 읽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잭은 열네 살이다. 부모가 일찍 죽고 네 아이만 남았다. 넓고 낡은 주택에서 법외 생존한다. 법외 생존? 그러니까, 잭과 누나 줄리, 동생 수와 톰은 그냥 산다. 먹고 자고 놀고 본능에 충실하게 ‘뒤엉켜서.’ 그들만의 낙원(!), 시멘트 가든에 폭력적이게도(?) 외부자가 들어오면서 충돌을 일으킨다. “그놈은 네 동생이야, 네 동생이라고.”(246) 아득한 옛날에 TV에서 보았던 게 맞나 했던 기억이 이 대사로 선명해진다. 샤를로트 갱스부르 주연에 앤드류 버킨 감독(제인 버킨의 오빠인 듯). 1993년 작.


 

사회 규범이 들어서기 전 세계. 소설이라서 가능한 매큐언 식 무의식 탐구다. 거칠고 황량한 초기 매커버. 한 세대 후 작품뿐 아니라 더 직접적으로는 3년 전 데뷔 단편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골고루 진하게 남아 있다. 예컨대,




첫사랑, 마지막 의식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Media2.0(미디어 2.0)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모여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는 「여름의 마지막 날」배경에 더해, 「가정 처방」소재가 (밝히진 못하겠다) 등장하며, 어린 부부와 동생이 사는 집 벽 뒤의 긁는 소리 「첫사랑, 마지막 의식」 분위기가 고스란하다. 또한 「입체기하학」부인의 이름이 메이지인 점은 『솔라』와도 연결……되나? 마이클의 첫 번째 부인이 메이지; 소소한 발견이랍시고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하여튼 27세의 이언 매큐언 여덟 편. 음산하고 황량하고 슬프다. 이 말을 또 써야겠는데, 문학이라는 ‘치외 법권’을 한정 없이 누린다. 『시멘트 가든』 작품 해설에서 본 바, 매큐언이 했다는 말이 이렇다.


“나는 죄와 벌의 문제를 다루는 도덕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인물들의 무의식 세계이며,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구조와 어떻게 갈등을 일으키는가, 그리고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사이의 괴리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이다.” (『시멘트 가든』253, 작품 해설)


역시 무의식 세계를 탐구하는 변태 독자로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뭐랄까, 매큐언은 더 읽고 싶다, 더더더(마약?) 느낌이다. 매큐언마약설을 퍼뜨리진 못하겠다. 마약은 몰래 하는 거... 그러면서도 따져 보니 번역 출간된 이언 매큐언은 장편 12권, 단편집 1권, 어린이책(!) 1권이다. 어린이책 『피터의 기묘한 몽상』(1994)은 매큐언금단증 용으로 남겨두었고, 장편 2권 빼고 다 읽었다. 2권 중 『검은 개』(1992)는 다음 주문에 들어 있고 『위험한 이방인』(1981)은 절판+구하기 어려울 듯+재출간 기대한다. ‘여덟 편의 개성 넘치는 단편이 수록된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지금도 작가 자신이 추천하는 그의 대표적 작품집이기도 하다.’(210, 옮긴이의 글) 나도 그러기로 한다. ‘매커버 맛 좀 봐라’ 식으로.


첫 사랑 마지막 의식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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