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사람 + 식스웨이크 Smoking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 8점
야누쉬 자이델 지음, 정보라 옮김/아작

 

“아빠! 하지만 진실은 하나라고 항상 말씀하셨잖아요.”
“현실에서는 두 개나 아니면 더 많이 필요할 때도 있어.”
“하지만 정말 진짜 진실은요? 하나뿐이죠, 그렇죠?”
“하나지.” (89-90)


‘프록스 외계인들이 소비에트의 은유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272)는 역자의 설명이다. 폴란드 작가 야누쉬(야누슈) 자이델의 작품에서 외계인에 점령당한 인간의 생활상은 그러므로 전체주의 색채를 띤다. ‘진실은 하나뿐’이지만 여러 개의 진실이 필요한 현실이라면, 내게도 낯설지가 않다. 대학교 들어가서야 진상을 알 수 있었던 제주4∙3사건, 3∙15부정선거,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쉬쉬하는 어른들은 어찌나 잘 쉬쉬했는지 나 자신 어른이 되고서야 머리에 뭔가를 넣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에게 쉬쉬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을 보면 그래도 약간은 나아졌나 싶기도 하다. 독재 향수를 그리워하는 어떤 무리가 다시 드리우려 하는 ‘그림자’가 없지 않다만, 중요한 것은 저들의 수준 낮은 짓거리들이 불러일으키는 정치혐오에 빠지지 않는 것일 게다. 궁금증, 호기심이 없어지는 순간 꼰대가 돼... 정치 무관심이 정알못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그림자로부터의 탈출>이 성장소설이자 정치소설이라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예전에는 세상이 이렇게 이상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걸 짐작조차 못 했어요.”(232) 호기심에서 비롯한 팀의 ‘개안’은 말 그대로, 성장이자 정치입문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징후야.” 스타브착이 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속도로 어른이 되지는 않지.”
“어떤 사람들은 절대 성장하지 못하고.” 밀트가 덧붙였다. (232)


사람의 아이들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아작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우리도 보편적인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상실감을 일깨우는 고통스러운 물건들을 모조리 치워버렸다. (…) 아스팔트를 깐 놀이터도 작은 공동묘지처럼 잔디로 덮거나 꽃을 심어버렸다. 장난감은 전부 불태웠다. (…) 이제는 오직 오디오테이프와 레코드를 통해서만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만 밝게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괴로워 못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약을 하듯이 어린아이들의 영상을 보면서 살아간다. (22)


또 하나의 세상 종말 모습이다. 출생이 없는 경우 되겠다. 대단치도 않은 이 세상을, 그나마 이어 조금이라도 대단하게 만들어 줄 후세가 없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포칼립스일 거다. 아포칼립스라고 쓴 김에 덧붙이자. 주인공 이름이 ‘테오’인 것만 보아도 종교적인 느낌이 처음부터 들더니…… 종국에도 그렇다. 다만, 오메가에서 알파로. 종말에서 희망으로. 임박한 종말 속에서도 한 자락 희망을 위해선 (독재 아닌) 권력 쟁취가 중요함을 빼먹지 않은 점은 약간 고마울 정도로, 세례니, 기도니 하는 ‘교회누나’ 느낌이 넘친다. P. D. 제임스를 알폰소 쿠아론은 어떻게 해석했을지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원작 <사람의 아이들Children of Men>이다.



식스웨이크 - 10점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클론들이 탄 우주선이 설정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영화 <더 문>이 있었고 <아일랜드>와  <나를 보내지 마>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소화하고, 넘어선다. 집필 년도 뿐 아니라 배경 년도로도 훨씬 훗날인 만큼의 월등함일지도 모르겠다, 고 하면 무르 래퍼티 님께 미안하겠구나. 엄청나게 쌈박한 ‘클론물’이다.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에서 본 바,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기반으로 하여 2017년 실제로도 유럽연합의회에서 인공지능을 법인격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했다던데, 무르 래퍼티의 2282년에는 클론 국제법이 제정되어 있는 형편이다.


‘클론의 존재 관리를 위한 보충 조항에 관한 국제법’에 따르면 ‘1. 개인의 클론을 동시에 두 개 이상 만드는 것은 불법이다. 각 클론은 하나의 개인이다. 클론 복제 기술은 개체의 증식이 아니라 생명 연장을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11) 이런 법 신나. 신나고 가뿐하고, 거기 있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여 궁금해지는 미래다. 아울러 “하지만 우린 해결할 거야.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494)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의 레종데트르란 것도 생각해보게 되고……. 이상하게 좀 슬퍼지기도 한다만. (훌쩍) 밀실추리, 스릴러 요소를 다 가진 SF. 근래 아작 중 최고잼.


“여기서 죽는 게 두려워? (…)”
“약간 두려워.” 히로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니까,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우린 모두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사실 세상을 더 좋게 만들진 못했어.”
“그게 목표야?” 멀리서 들리는 듯한 미노루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그게 네가 클론이 된 이유야?”
“아니.” 히로가 말했다. “내가 처음에 클론이 되고 싶었을 때는 고상한 목적 같은 건 없었어. 하지만 갑자기 수백 년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다지 많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지.”
“하지만 넌 저 모든 생명들, 저 인간들과 저 클론 백업들을 책임지고 있어.” 미노루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그건 고상해.” (471-472)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9/07/09 17:32 # 답글

    저 해골 직접 얼리신 거에요?ㅋㅋㅋ 역시 부지런하신 이웃님^^
  • 에르고숨 2019/07/09 17:57 #

    네! 지금도 냉동실에 해골 들어 있는 걸요!ㅋㅋㅋㅋ (소주 칵테일 필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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