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심장 + 숲 사람들 NoSmoking


 야생의 심장 콩고로 가는 길 -레드몬드 오한론 지음, 이재희 옮김 / 바다출판사


이번엔 서쪽 콩고, 콩고공화국이다. 1960년 이전에는 프랑스령이었다. 공산주의가 들어섰던 1970~1991년은 콩고인민공화국이었다가 다시 콩고공화국이 되었다. 레드몬드 오한론이 머물렀을 때는 콩고인민공화국 시절. 깊은 숲속 텔레 호수에 산다는 공룡 모켈레음벰베를 찾아 나선 여정이다. 모켈레음벰베는 물론 맥거핀……이라고 적어도 스포 아니겠지? (동심 파괴. 중생대 공룡은 현 지구상에 없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그러니까 능청맞은 기행문이다. <No Mercy>라는 원제다. ‘짤 없는’ 여행기 되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자연주의자’ 오한론을 둘러싼 숲과 강, 동물과 식물이 거의 아우성치는 듯하다. 자세한 묘사가 집요하고 현란하다.


거기에 더해, 함께 떠난 친구와 안내인, 현지인들 간 일화와 대화 그리고 자신의 꿈, 기억, 환각까지 합세하니 여행기의 양과 질이 넓고 높다. 현지 안내인이나 피그미들에 비하면 커다란 덩치에 허여멀겋고 더러운(잘 안 씻는다) 저자의 어수룩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런 류의 기행문,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했더니 브루스 채트윈과는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이와의 마지막 만남도 언급해줘서 더욱 반갑다. 저자는 1947년 생으로 오지탐험가이자 여행 작가다. <콩고로 가는 길> 전에는 보르네오 여행기와 몇몇 저작이 있는 듯한데 번역이 안 됐다. 빌 브라이슨 만큼 유명세를 타도 이상하지 않을 글발인데. 책날개에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한 마디가 있다. ‘엄청난 걸작.’ 동감이다.


둑에서 응제가 나귀처럼 시끄럽게 웃다가 잽싸게 차렷 자세를 취하더니 경례를 부쳤다. “물 퍼요! 삼촌! 안 그러면 가라앉아요! 모켈레음벰베는 배가 상당히 고플 거예요!”
마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요!” 마누는 비키가 배를 밀며 출발하자 소리쳤다. “왜 그렇게 항상 넘어져요? 다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2권 284)





숲 사람들 -콜린 M. 턴불 지음, 이상원 옮김 / 황소자리
 

 

‘우리 주위에는 온통 어둠뿐이지. 하지만 어둠이 숲에서 왔다면 그 또한 좋은 것임이 분명하네.’ (132)


아쉬운 마음에 콩고를 못 떠나고 있다. 오한론도 언급했던 턴불의 <숲 사람들>이다. 다시 동쪽 콩고. 1950년대 말이니 루뭄바가 살아 있던 시절이기도 하구나. 제국과 식민에 대한 얘기는 없다만 큰 마을 근처에 벨기에 사람이 모텔을 지었더라는 언급은 잠깐 나온다. 그 외엔 숲과 사람 이야기. 피그미에 대한 편견을 없애준 인류학적 기록이라는 평을 받은 작품이다. 등장하는 이름이 많아 처음엔 정신이 없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차차 캐릭터가 선명해지면서 피그미 사회를 잘 그려내 준다. 피상적인 관찰기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호흡했던 이야기, 일상, 행사, 사냥,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 등.


아기자기한 일화들이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울린다. 무엇보다, 서늘하고 촉촉한 숲이 참 풍요롭고 정답게 다가온다. ‘암흑의 핵심’ 이나 ‘야생의 심장’으로 표현되는 그곳인데. 모르면 무서워하거나 혐오하게 되는 건 우리가 그리 진화된 때문이겠으나 궁금해 하고 알아보려 하는 것은 더 놀라운 우리 능력이겠다. 그냥 우리 동네 사람처럼 여겨지는 이 사람들을 소개해줘서 고맙다. 키 크고 허여멀건 이방인 작가도 잘 보듬어 준 숲 사람들은 더 고맙고. 오한론의 선배 턴불은 그래도, 오한론과 달리 걷는 법을 알았던 모양이다.


은조보도 우리를 맞으러 나와 있었다. (…) 그러고는 그것 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더니 “자, 아무 일 없었지 않소. 저 사람도 걷는 법을 안다고.” 라고 말했다. 이것은 굉장한 칭찬이었다. 피그미에게 있어 숲 사람이 마을 사람과 다른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걷는 법’을 아는 것이었다. 피그미에게 걷기란 미끄러지거나 헛딛거나 넘어지는 일 없이 민첩하고 조용하게 달릴 줄 안다는 뜻이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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