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한 독서, 작가님 어디 살아요? NoSmoking


난폭한 독서 -금정연 지음 /
마음산책
 

대여 전자책 따위로 ‘스쳐’ 읽을 책이 아님을 미처 몰랐습니다. 저자는 작가 열 명을 소환하여 그 대표작들을 가지고 노는데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 글에 의하면 ‘책을 앞에 놓고 갉아 먹는 방법을 연구’(428/451)하는데), 나는 열 명 중 절반 (정확히는 4.5명이지만 절반이라고 합시다) 만 읽은 상태라 나머지 절반 작가와의 놀이에는 동참할 수가 없었거든요. 대여 기간이 일주일쯤 남았지 싶은데 그 동안 『돈키호테』, 『운명론자 자크』,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방랑아 이야기』, 『부바르와 페퀴셰』를 다 읽을 수는 없잖아요? (완전히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내 게으름을 내가 압니다) 금정연 서평을 먼저 읽으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게 바로 핵심입니다. 금정연 서평가의 글은, 이미 읽은 책을 더 재밌게 환기하고 음미(吟味, ‘맛’, 먹는 거 맞네요!)하게 하거든요. 원저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재미가 반감합니다. 그러니까, 『난폭한 독서』는 종이책으로 든든하게 옆에 두고, 원저와 함께 인증샷 찍어가며 읽어야 할 책이란 말씀이지요.


따라서 내겐 굉장히 슬픈 일이 일어납니다. 『난폭한 독서』 종이책이 다시 보관함에 둥지를 틉니다. 이런 적 없었습니다. 서평을 ‘읽고 나서’가 아니라 서평을 ‘읽기 위해’ 원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말입니다. 네, 금정연 서평가의 글 ‘수다스럽고’(6/451) 무척 재밌습니다. 부러운 글발입니다. <프레시안 북스>에 연재했던 꼭지들이라 더 그럴까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느낌이 좋습니다. 특히 고골의 「외투」와 함께 진행하는 패딩코트 구매기는 끝내줍니다. 저자의 ‘패딩적 현실’이 이 겨울에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저자가 걱정했던 ‘패딩적 미래’라고 해야겠군요. 지금쯤이면 12개월 카드할부금도 완납했을 것이고, 만만치 않은 서울 추위가 반가우실 듯도 합니다. 한편 패딩을 입지 않는 나는, 있던 머리털도 잘라버려 귀가 아주 시렸습니다. 모자를 쓰자니 새 머리털 자랑을 못하고, 안 쓰자니 춥고. 어제 내 모자적 현실은 그러했습니다. 모자적 미래는 이따가 얘기하기로 하지요. 크레마마 님 책장에 대여 기간이 곧 끝나는 책이 또 있네요?



작가님, 어디 살아요? -모니카 드레이크 외 31명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작가님, 어디 살아요?』랍니다. 옳거니. 어서 읽고 ‘90일뒤사라집니다’ 책장에서 이사시키려 했습니다만…….





무려 38명의 작가와 장소를 다룹니다. (망했다) 하나도 읽어 보지 않은 작가만 해도 케루악, 피셔, 패터슨, 하디, 볼드윈, 베드퍼드, 킨케이드, 볼스 등입니다. ‘세계문학 거장들의 발자취를’ 좇은 ‘순례의 기록이며 작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알라딘 책소개)는 글을, 과연 작가와 생면부지인 상태로 만나도 되는 걸까요? 이 책 역시 대여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나본 적 있는 작가 챕터만이라도 열심히 읽어야 할 시간입니다만, 왠지 의욕이 없네요. 여행할 기분이 안 납니다. 머리를 감고 왔더니 내게는 단지 모자적 현실밖에 없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어제는 드라이로 만든 머리였나 봅니다. 게다가, 올가을 프랑스 어학연수 1년을 계획하고 있는 정선생과 카톡수다를 한바탕 떨며 부러워한 오후이기도 했고요. 정선생의 프랑스적 1년과 내 모자적 미래……. 의욕이 나겠습니까. (코 풀고 왔습니다, 운 거 맞습니다)


“루브르 1시 (다이애나) 그늘에서.” 그녀는 한 쪽지에 썼다. 수사슴의 목을 오른팔로 감싼 채 나신의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 있는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의 흰 대리석 조각상은 루브르박물관의 말리Marly 조각 마당에서 네 개의 층계참을 올라간 인적이 드문 방에 세워져 있다. 비밀만남을 갖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230-231/463, 이디스 워튼에게는 언제나 파리가 있었네, 일레인 시오리노)


그래도 독후감이라고, 일레인 시오리노가 멋지게 쓴 이디스 워튼의 파리 편은 기록에 남깁니다. 워튼이 파리에서 가진 밀회를 잠깐 설명하더군요. 하하! 루브르박물관 데이트라면 나도 해 봐서 압니다. ‘오시리스 앞에서’, ‘<사계> 방에서’, ‘디오니소스 앞에서’ 식으로 정했던 약속이 지금 생각하니 꽤 낭만적이고 문화적이고 쾌적하기까지 했네요. 루브르는 하루에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산책 가듯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박물관에서 작품들보다 더 자세히 관찰했던 게 약속 상대방이긴 했지만요. 폴로 향수를 과하게 쓰던 이라 냄새로 먼저 알아채곤 했던……쿨럭. 일레인 시오리노는 『순수의 시대』 마지막 장면과 엮어 파리 길들을 따라 걷게 합니다. 뉴랜드 아처가 앉았던 벤치가 어디일지 상상해보면서 말입니다. 참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순수의 시대』만큼이나요. 각기 다른 저자들이 쓴 38개 여행기이므로 맛이 들쑥날쑥합니다. 몇 개 골라 읽은 (왜인지는 아시지요) 것 중에는 이디스 워튼 편이 가장 멋졌습니다. 일주일 동안 천천히, 모자 쓰고, 또 만나보기로 합니다.



덧글

  • 2019/01/09 21:43 # 삭제 답글

    아.. 머리 예쁘다 생각했는데 모자 ㅠ 어차피 머리 추우니 쓸 꺼였다고 생각합시다. ㅎㅎ
    난 또 금정연작가님 어디 사냐고 ㅋㅋㅋ 묻는 줄 ㅋㅋㅋ 금정연님이 아주 옛날에 내 서재에 가끔 덧글도 달아주시고 그러셨는데.. 어느샌가 유명인이 되셨음. ㅎㅎ 이 책 보관함에 넣어야 겠네요. 궁금! 두번째 책도 매우 궁금한데 ㅠ 이미 이번 달치 책 다 사서 텅장이 되었어요.
  • 에르고숨 2019/01/09 22:51 #

    예쁜 머리는 이발 당일만 가능한 것으로 밝혀져. (어쩐지 커팅시간보다 드라이시간이 더 길더라니까요;) 어차피 쓸 모자.ㅎㅎㅎㅎ맞아요.
    금정연 작가님은... 집에 사시겠죠!ㅋㅋㅋㅋ 정말 알라딘에는 훌륭한 글쟁이들이 드글드글해요잉? 덧글까지 나누셨다니 힝 좋으셨겠다요. 근데 뽀 님. 이번 달 아직 초반인데 벌써 다 지르셨으면 어떡해욧.ㅜㅜ (저는 매일 장바구니 쳐다보며 꾹!! 참고 있는 중.)
  • 달을향한사다리 2019/01/22 13:59 # 답글

    흠... 위험한 책이군요! ㅋㅋㅋ 너무 위험하니 얼른 위시리스트에 꾹꾹 눌러담아야겠어요... 하아...
  • 에르고숨 2019/01/22 16:24 #

    위험한 책ㅋㅋㅋ 보관함 폭발 주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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