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Smoking

모스크바의 신사 - 10점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현대문학


러시아혁명을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거였어. 가벼운 듯 진중하고 웃기는 듯 울려. ‘유한계급의 마지막 야망’(16)이 보기 좋게, 따뜻함과 쓸모 그리고 자유가 되는 이야기.


라고 백자평을 먼저 써 놓고 곰곰... 구시대 귀족은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 삶에 어떻게 적응하거나 처신하는가. 물론 시베리아 귀양을 제외하고. <열두 개의 의자>에서 보로뱌니노프는 공공기관에서 일개 직원으로 일하는 한편 압수당한 보석을 찾아 러시아 전역을 다닌다. 사회주의 이상을 거역할 수는 없겠고 예전 재산은 되찾고 싶고. 백자평에 옮겨 쓴 ‘유한계급의 마지막 야망’은 귀족의 매력을 말함이다. 고상한 취향, 예절, 배려 같은 거. 보로뱌니노프는 매력적이기보다는 그냥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인데 반해 모스크바의 신사, 로스토프는 능력자인데다, 모르면 배운다.


혁명 이전에는 귀족이었기에 신변에 대한 큰 걱정 없이 혁명 시(詩)에 이름을 쓸 수 있었고, 혁명 이후에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이토록 눈에 띄게 목적 없는 사람’(16)이 돼버리는 아이러니. 스탈린의 민낯이기도 하겠다.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화정책으로 숱한 시인들로 하여금 침묵의 시를 쓰게 했던 거 말이다. 웃기고 슬픈 시대, 로스토프는 호텔 감금형을 받는다. 호텔에 갇힌 처지에서도 과거 귀족으로서 갖췄던 우아함과 학식은 좋은 쓸모가 된다. 호텔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데 있어서나 책임 질 사람이 생겼을 경우에도, 친구를 사귀거나 도움을 주는 순간에도. ‘신사’로서의 자질은 사회주의 이상에는 ‘위협’(18)이 될지언정 자유의 이상에는 필요조건일지도 모르겠다.


호텔에서의 하루, 이틀, 열흘, 6개월, 1년, 2년, 4년, 16년…… 1922년부터 1954년까지. 이보다 더 잘 적응할 수도 없겠어, 싶으면서도 각 챕터마다 남는 질문. 로스토프는 행복할까. 로스토프가 기꺼이 만족스러워 하는 장면에서조차 마음 한 편이 아픈데. 왜냐고. 갇혀 있으니까. 그리하여 작가의 마지막 한 방에 울컥하게 되는 것이겠다. 호텔 배경이라는 측면에서 <그랜드 호텔>, 혁명 이후 귀족을 그린다는 점에서 <열두 개의 의자>, 결정적인 실마리를 품은 영화 <카사블랑카>까지 링크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것 속에서 매력 뚝뚝 흘리며 우아한 <모스크바의 신사>다.


“편리함이라는 게 뭔지 얘기해줄게요.” 잠시 후 그가 입을 뗐다. “정오까지 잠을 잔 다음에 누군가를 시켜 쟁반에 받친 아침 식사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 약속 시간 직전에 약속을 취소해버리는 것. 한 파티장의 문 앞에 마차를 대기시킴으로써 얘기만 하면 즉시 다른 파티장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 젊었을 때 결혼을 피하고 아이 갖기를 미루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고의 편리함이에요, 안나. 한때 난 그 모든 걸 누렸었죠. 그런데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불편함이었어요.” (555)


 

덧글

  • 다락방 2019/01/03 07:46 # 삭제 답글

    저도 이거 참 좋았어요! 헤헷.

    에르고숨님, 해피 뉴 이어!
  • 에르고숨 2019/01/03 12:45 #

    옥상 꿀 장면, 지배인의 저글링 장면,,,ㅎㅎ

    땡스+다락방 님도 새해 복!
  • 달을향한사다리 2019/01/22 14:03 # 답글

    작가 이름만 봐도 기대되는데, 이웃님의 리뷰 읽으니 더 기대되네요. 매력 뚝뚝!!
  • 에르고숨 2019/01/22 16:25 #

    오 이웃님 <우아한 연인> 읽으신 거. 저는 안 읽어서 비교 못하지만, 그 책보다 <모스크바의 신사>가 더 좋다는 소문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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