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전갈자리. Smoking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박연준 지음/알마


프리다 칼로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불통, 사랑의 폭식자,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에 매달려 펄럭이는 깃발, 사랑이 지배하는 식민지다. (16)


지독한 사랑입니다. 피 낭자한 아픔이고 강렬함입니다. 과연 괴롭습니다. ‘예술로 승화한 고통’이라고 진부하게 쓸 뻔하다가, ‘고통을 벽에 걸어두었던’(91) 화가라고, 시인의 말을 빌려옵니다. 프리다 칼로 그림을 ‘번역한’ 시 열 편과 편지, 산문이 책 한 권을 이루었습니다. 박연준 시인입니다. 그림과 시의 만남, 그림 번역이 근사합니다. 편지와 산문으로는 시인의 신변 근황을 알려주네요. 그것까지 알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알게 돼버렸습니다. 그래요, 사랑이라니까요.

돌보아야 할 사랑이나 그로 인한 고통이 없는 내게 밤은 짧고, 평화롭습니다. 내 밤이 늘 이랬던 건 아닙니다. 내 고통은, 오래전에 예술은커녕 토사물과 똥으로 흘러나간 그것은 수소 산소 질소 탄소 등으로 분해되어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 겁니다. 짧고 평화로운 밤을 내게 주기 위해. 그러나 고통스럽게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읽게 하기 위해. 어쩌겠습니까, 사랑을 멈추지 말라는 책도 열어 보고 막 그럽니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이종산 외 지음/큐큐


부끄럽게도 나로선 모두 처음 만나는 작가 여섯 명입니다. 실린 소설도 여섯 편이지만, 각 작품이 모티브를 취한 고전 작품이 있으므로 총 열두 편을 읽어야 완독한 느낌이 들 듯합니다. 우리 현대 작가가 소환한 고전 작품이 이렇습니다.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중 ‘애러비,’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허먼 멜빌 <선원, 빌리 버드>, 셰리든 르 파누 <카밀라>,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더블린 사람들>과 <선원, 빌리 버드>를 못 읽어봤습니다만 나머지 네 편으로만 봐도 모두 매력이 넘치는 고전입니다. 조이스와 멜빌은 ‘후일담’(기획의 말, 최성경)과 순서를 바꾸어 내게 오게 되겠네요. 그것도 특별한 독서가 되지 싶습니다. 작가들 개성을 따라, 애틋하고 아련하고, 때로는 아프고 어둡게 또 신비롭게 읽다가 마지막 작품에 이르러서 ‘어머나 깜짝이야,’(178, <유월 열차>, 김봉곤) 했습니다. 아픈 꿈처럼 다시 환기되는 <은하철도의 밤>입니다. 어쩜 이토록 멋진지. 보관함에 들어 있는 <여름, 스피드>가 더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 같습니다.


열차는 다시금 출발해 너와 나를 스쳐 지나가는데, 지난밤과 낮 우리를 둘러싸던 그 노래.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제발 멈추지 말아요 하고 반복되던, 고작 사랑이지만 결국 사랑이라고 울려 퍼지던 그 노래를, 무너질 듯 무너지던 천장, 은하처럼 반짝이고 터지던 미러볼, 깊은 밤 나는 흥얼거리는 걸 멈추지 못하면서, 조금은 울면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우린 하나가 되진 못하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둘쯤은 될 거라고, 눈을 뜨면 사랑을 할 테고, 이대로 눈을 감아도 사랑을 하는 거라고, 사랑하는 류,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고. (197-198, <유월 열차>, 김봉곤)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특별판) 
이응준 지음/작가정신


공교롭게 전갈자리로 이어집니다. 김봉곤 <유월 열차>의 ‘전일담’ <은하철도의 밤>에서도 전갈자리가 나오거든요. 전갈이 타 죽은 불꽃이라는 ‘그 불은 빨간 루비보다도 투명하고 리튬보다도 아름답게, 술에 취한 듯 타오르고 있었습니다.’(<은하철도의 밤>) 이응준의 전갈자리도 붉습니다만 어둡고 처연해, 투명한 루비 같지는 않고 검붉습니다. 피 같습니다. ‘그는 11월의 전갈자리에서 태어났다.’(15)에서 시작해 ‘그의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은 이러하였다.’(112)로 끝납니다.

재벌 아들이 베트남에서 소일합니다. 마약을 합니다. 섹스를 합니다. 미래도 꿈도 없습니다. 퇴폐, 탐미, 어쩌면 데카당스? ‘세기말 우울’이라고 손가락들이 저절로 쓰고 말았는데, 초판 발행이 2001년 3월이라니 그대로 두렵니다. 누아르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입니다. 아, 영화로도 만들어졌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18년 전 작품을 이제야 만나 좀 머쓱합니다만 오히려 예리한 날이, 벼린 그대로인 듯해서 더 반갑습니다. T가 향로를 녹여 만들었다는 칼처럼 말이지요. ‘잔인한 어둠에 갇힌 한 사내의 몰락을 그리고 싶었다’(11)는 초판 작가의 말입니다. 어둠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는 게 너무 무료했고, 여태 무엇에 고통 받아 왔던가를 알지 못했다. 그는 과연 이것을 인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주저하고 있었다.
원폭 같은 비가 터졌으면, 버섯구름도 있는.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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