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셰맥) + 맥베스(요맥) Smoking

베니스의 상인.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재남 옮김/신원문화사

 

맥베스 : 나는 이제 공포도 거의 다 잊어버렸다. 밤에 비명소리를 들으면 오감이 서늘해지던 때도 있었지.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칼이 살아 있는 양 곤두서던 때도 있었어. 공포는 실컷 맛본 나다. 이젠 살인의 기억도 예사가 되고, 아무리 무서운 일에도 나는 끄덕하지 않아. (383/407, 5막 5장)


광기와 권력욕 그리고 몰락의 맥베스다. 따르거나 거스르거나, 예언된 운명이 등장하는 한 꼼짝없이 사로잡힌다.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튼튼하게 만들 수밖에’(296/407) 없는 전개. 첫 살인부터 몰락이고 점점 심해지는 몰락이며 진퇴양난 몰락이어서 맥베스가 죽는 장면은 정작 싱겁기까지 하다. 어쩌면 예언을 듣는 순간부터 맥베스는 이미 왕이고 이미 살인자이며 이미 죽어버린 정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저 걷고 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배우처럼 무대 위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가 사라져버리는 것.’(385/407)


‘활개치고 안달’하는 모습을, 미간에 주름 잡아가며 보는 이유. 카타르시스일 거다. 어찌나 끝장으로 몰락하는지 후련... (이게 아닌가.) 맥베스를 처음 읽는 것도 아니면서 여전히 반하게 되는 몰락이다. 4막 1장에서 환영 1. 2, 3이 일러주는 예언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큰 재미다. 1. 파이프의 영주 맥더프를 경계하라. 2. 여자 몸에서 태어난 자 중에서 맥베스를 해칠 자는 없다. 3. 버남 숲이 맥베스에게 쳐들어오기 전에는 절대 정복되지 않는다. 요 네스뵈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 지켜보기에 더욱 재미있을 세 가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글들에서 종종 언급하는, 잠에 관한 대사를 옮겨놓는다.


맥베스 : 누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려. ‘이젠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맥베스는 잠을 죽여 버렸다.’하고. 아, 천진난만한 잠, 고민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 주는 잠, 하루하루 삶의 멈춤이고, 노고를 씻어 주는 잠, 다친 마음을 치료해 주는 진정제 잠, 대자연의 주된 요리 잠, 이 삶의 향연에서 최고의 영양분은 잠. (258-259/407, 2막 2장)


‘술이 깰 때까지 자시오’할 때의 잠. 취기를 씻어주는 잠, 숙취를 풀어 주는 잠...(이게 아닌가2) 하여간 잠 좋아.



맥베스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현대문학


셰익스피어 맥베스(셰맥) 뼈대에 살이 근사하게 붙은 요 네스뵈 맥베스(요맥)다. 투실하고 너끈해 데리고 다니기에도 든든하다. 727쪽, 4센티미터 두께 벽돌. 긴 분량이 담보하는 장점을 두루 가졌다. 무엇보다 맥베스 부인의 심리기제가 충실한 점이 멋지다. 카리스마 넘치는 악인의, 그리 된 과거 사연 같은 거. 셰맥에서 ‘저 사람은 어째서?’ 궁금증을 유발했던 캐릭터들 중 으뜸이기도 하다. (맥)더프가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며 주변 인물들 각각 캐릭터도 잘 그려진다.


무대는 아니, 배경은 쇠락한 가상 도시 1970년대다. 정치는 부패했고 환경은 오염됐으며 마약이 성행하고 가난과 실업이 일상이다. 물론 강이나 도로 건너에는 번듯한 동네가 없지 않다. 셰맥에서 몇몇 영지가 있었듯, 요맥에는 빈부 차가 확연한 동네들이 있다. 맥베스는 경찰이고 레이디는 고급 카지노 주인, 헤카테는 마약업계 거물이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의 광기에 박차를 가하는 도구로 마약이 오는 점은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에서 공히 보이는 듯도 하다. <마녀의 씨>(템페스트), <던바>(리어왕) 등. 광기나 환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주술이나 마법보다는 ‘화학적’ 개연성을 가미했다고 할까.  


가장 기대했던 환영 1. 2, 3의 예언은, 하나도 배반하지 않으며 감동을 준다. 가만 생각해 보면 셰맥에서 숲이 움직이는 장면은 무시무시했을 듯하다. 요맥 기차가 그 이름을 가졌을 때부터 각오는 했지만 그렇다고 비극의 대단원이 힘을 잃지는 않는다. 두 장면에서 울었는데…… 쓰면 길어지니 비밀로 하자. 셰익스피어 원전이 현대 작가의 상상력에 제약이 아니라 자유를 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멋지다는 말은 <시간의 틈>(겨울 이야기) 독후감에서도 쓴 적 있다.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원전이라는 제약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요맥. (치맥이 생각난다면, 내 잘못이다.)


“어떻게 감히 그럴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보너스가 말했다.
“어떻게 감히 그러느냐고?” 헤카테가 말했다.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맥베스는 불빛에, 권력에 속절없이 끌리는 나방이 되었거든.”
“그러다 나방처럼 불타 버리겠죠.”
“아마도. 맥베스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상대는-나방도 그렇듯이-자기 자신이야.”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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