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Smoking

사탄탱고 - 10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알마


‘루머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악마가 숭배하는 단 하나의 말’이라는 헝가리어 소설이다. 따옴표 문장은 <부다페스트>에서 획득한 정보로, 헝가리 작품을 만날 때마다 내가 계속 퍼뜨리는 루머이기도 하다. 악마언어로 쓰인 사탄탱고. 마침맞다. 옮긴이가 독일어 전공자인 점으로 보아 중역인 모양인데, 번역 문장 좋다.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하는 장문들이 삐걱대지 않는다. 이야기가 동적이고 진행이 느리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알마 인코그니타 시리즈의 아름다운 양장본으로, 오래오래 천천히 읽을 작품이 아닐까 했으나 웬걸, 페이지터너다.


오늘 낮볕이 이랬다. 같은 시월인데, <사탄탱고>에서는 추적추적 비 내린다. 퇴락한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이다. 이미 몇 차례 이주가 있었던 듯, 남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모종의 기다림이 있다. 예수를 기다리는 신봉자의 모습과도 닮았다. 구원의 색채를 띤다. 이쯤 되면 이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고도인 건가. 아니다. 도착한다는 소문이 퍼진 후에, 한 바탕 술판과 ‘탱고’의 기다림 끝에, 구원자로 여겨진 이가 온다. 멋들어진 연설로 기대에 부응한다. 주민들이 흔쾌히 투척한 돈을 갖고 사라진다. 이쯤 되면 이이는 그냥 사기꾼인 건가. 아니다…… 


기다림의 객체가 고도도 아니고 사기꾼도 아닌 데에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부조리극 아니고 범죄물 아닌 어떤 아름다운 데에. ‘구원자’가 관계 당국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장면은 거의 카프카 오마주가 아닐까 했고, 하늘에서 내려온 베일 같은 환상 요소가 엄연함에도 꿈이나 뜬 구름 같지 않다. 오히려 땅에 두 발 딱 붙인 환멸이라고 할까. 얼버무리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 있고, 목표물을 가리키지 않으며 완벽하게 닫히는 원. 무엇보다, 저 원에서 이탈하지 않고 남는 건 기록하는 이(의사)와, 술집이다, 여러분.


다시 피곤이 몰려왔고 어딘가에 앉지 않으면 고꾸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술집으로 가는 다진 길이 나타나자 그는 쉬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100걸음 정도만 가면 되겠지.” 그는 스스로를 격려하듯 말했다. 술집의 창문과 문에서 희망처럼 불빛이 내비쳤다. 캄캄한 밤중에 유일하게 밝은 점인 그것을 향해 그는 방향을 잡을 수가 있었다. (110)



P.S. 비와 술, 거미, 종소리는 작품 전반 기조를 형성하는데, 이중 환상요소로 남겨놓아도 무리 없을 종소리조차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현실로 까발린다. 의사가 종소리 발원지를 찾아간 장면에서,


종을 찾으러 간 의사가 갑자기 뭔가 기록하고 싶어서 종이를 찾은 게 아니라면, ‘여기에 종이 있습니까?’를 잘못 쓴 거라고 해줘요, 알마. (1판 1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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