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 쓰는 500자평과 발췌문 Smoking

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아카이브


오타 아이의 <범죄자>가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손에 들어 본 작가의 이전 작품. 원제는 ‘幻夏’(변할 환, 여름 하)로, 소년이 극적인 변화를 겪는 여름을 말하는 모양이다. 상징성이 강한 원제에 비해 번역제목이 좀 덜 멋지다. 잊힌 소년도 아니고 ‘잊혀진 소년’이라니. 그렇다고는 해도 묵직한 사회파 추리물이다.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몇몇 범죄들이, 알고 보니 23년 전 ‘원죄’에 뿌리를 두고 있더라는 설정. 원통할 원寃을 쓰는 원죄(寃罪)다. 23년 동안의 범죄는, 국가 폭력에 대한 비틀린 복수이자 소년의 어두운 변태(變態)인 셈이다. 등장인물들 중 우리 현실에서도 본 듯한 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경찰과 법원의 높으신 분들이더라. 조현오 김기춘 양승태 같은 이름들, ‘법 기술자’들의 사법 농단. 사죄하는 가해자가 하나도 없는 것까지도 어쩜 이리 닮았는지. <범죄자>는 보관함에 안전히 간직하기로 했다.

나오가 시바타니 데쓰오를 기억하느냐고 묻자 오카무라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하더니, 주저 없이 기억에 없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인생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사건은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많은 것을 빼앗긴 쪽이 평생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425)


 

검은 마법과 쿠페 빵 
모리 에토 지음, 박미옥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어둡고 찜찜한 추리물일 거라고 예상했다. 왜지. 스포 당할까봐 책을 읽기 전에는 설명과 리뷰를 자세히 보지 않는 내 탓이겠다. 표지도 제목도 그리 착 달라붙지는 않은 듯하나, 그건 내 탓 아니다. 아이의 성장기다. 십대 노리코가 비행하고 사랑하고 성숙하여 제 갈 길 잘 찾아간 이야기. 지랄총량법칙 성장소설. 다른 무엇보다 자기중심성에서 불현듯 벗어나는 순간이 그려진 게 좋다. 성장은 눈이 높아질 뿐 아니라 넓어지게도 하는 거니까. 키만 크는 이야기를 ‘성장소설’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술 구덩이에 빠지고 물건을 훔치면서 허무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언니도 허무한 사랑의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바람을 피워 엄마를 울리고,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울고, 모두 그렇게 허무한 나날을 보냈으면서도 결국 그 허무를 딛고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207/318)


 

개를 키우는 이야기 / 여치 / 급히 고소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 옮김/책읽는고양이


다자이 오사무 단편 세 개가 묶였다. 첫눈엔 다자이 오사무 같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대표작 <인간 실격>만 읽은 내가 다자이 오사무를 잘못 알고 있거나 덜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더 알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개를 키우는 이야기>는 제목이 스포일러이면서 귀엽다. 개를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어쩌다보니 키우게 되는 화자, 투덜이 예술가가 혹시 내가 잘 모르는 다자이 모습과 닮았는지? 이렇게 귀여우시다면 더 알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여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의 편지>와 같은 형식으로 여인의 편지다. 속물이 되어가는 예술가 남편 관찰+고발기. (응, 버리고 떠나세요.) 이 속물 예술가 남편이 혹시 내가 잘 모르는 다자이 모습과 닮았는지? 그렇다면 그만 알고 싶다만. <급히 고소합니다>는 다른 번역본에서 <**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다는데 나는 <급히 고소> 제목이 더 좋다. 화자가 누구인지 차차 알게 되는 게 이 작품의 묘미인 듯해서다. 개, 여치, 급고소 세 작품. 순서대로 염세적이다가 섬세하다가 어둡다…… 어라, 다자이 오사무 맞잖아, 다자이 님 살짝 더 알게 되고 말았군.

그 사람은 식탁 위에 있는 물병을 들어 물병 안의 물을 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대야에 따르더니 새하얀 수건을 자신의 허리에 걸치고 대야에 담긴 그 물로 제자들의 발을 차례차례 씻겨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유를 몰라 당황스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저는 왠지 그 사람의 숨겨진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저 사람은 외로운 것이다. (69/97, 「급히 고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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