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 자칼의 날 NoSmoking

김기춘과 그의 시대 - 8점
김덕련 지음/오월의봄


2013년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나타났을 때 그저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더라. ‘르브낭(revenant, 유령, 망령).’ 역사책 어두운 페이지에나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했던 유신 망령이 되살아오다니 무서워서 혼났다. 우리 동시대인들은 어째서 유령을 다시 봐야 했단 말인가. 하기야 유신공주가 등장한, 판타지스러운 정권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사람, 우리 눈에 안 보일 때조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는 게 더 무섭다. 국회의원 3선에다, ‘우지 파동’으로 농심 법률 고문이었음은 알려졌다고 해도 KBO 총재까지 역임했다는 사실은 이 책으로 알았다. 입법, 사법, 행정 뿐 아니라 기업과 스포츠 권력의 자장 안에서 핵심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만 했지 늘 안락하게 거기 있었다. 성실하고도 꼼꼼하게. 적폐유령답게.


유신헌법을 손보고, 숱한 간첩을 만들어냈으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고 강기훈 씨를 유죄로 만들 때 법무부 장관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남이가’ 선거법 위반조차 법을 이용해 빠져나가 프레임 설정의 진수를 보여줬던 인물. 판타지는 소설로 봐야 하는 법이다. 현실이 판타지이면 억울한 사람과 희생자가 너무 많아지거든. 이 사람으로 인해 죽은 이가 몇이며 삶을 망친 이가 몇인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기억이 안 납니다’였다가 ‘그렇다면 내가 몰랐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까지 낱낱이 보았다. 유령의 끝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끝났느냐고? 아니다. 아직 진행 중이다. ‘노구’를 이끌고 부축 받으며 오늘도 법정에 나왔다. 선민의식에 가득 차 권력의 주변과 핵심에 머무르며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판타지민주주의를 살았던 유령. 이제 무섭지는 않은데, 우습지도 않다는 게 참, 뭐랄까. ‘미안합니다’를 듣기에는 너무 ‘노구’인 게 아쉽다고 할까.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과 상충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검찰·사법부·언론 개혁의 진전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43)


자칼의 날 - 10점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김기춘이 문세광을 신문할 때 언급했다는 ‘전설’로 알려진 작품. 김기춘이 아니어도 명불허전이다. 킬러와 형사 양측에서 각각 펼쳐가는 진행이 숨 막힌다. 범죄와 추적 모두 치밀하다. 정신없이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도 무리가 없다. 질질 끄는 곁다리 없이, 겉멋도 없이 직진한다. 드골이 장수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모든 독자가 읽기도 전에 스포일러 당한 이야기임에도 박진감이 넘친다. 슬프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어째서이지? 어째서이긴. 잘 썼기 때문……. 동서문화사 초판이 1977년이다. 김기춘이 1974년 8월 4일 대천 해수욕장 휴가 중에 읽었다는 판본은 아니겠다. 왠지 다행스럽다. 르브낭과 같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기침을 하더니 침을 뱉었다.
“치사스런 개새끼들!”
그는 램프의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가 똥똥한 부인의 곁에 누웠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붙잡히면 안 된다, 이 젊은 녀석아.” (388)




덧글

  • 이요 2018/09/21 11:17 # 답글

    오...위시리스트에 올려놔야겠어요.
  • 에르고숨 2018/09/21 11:53 #

    어느 책이요? 김기춘은 생각보다 살짝 지루하고 자칼은 꽤 묵직해서 저는 두 권을 동시에 읽었어요. 참고하세용.ㅎㅎ
  • 解明 2018/09/21 18:49 # 답글

    법조인이 아니라 '법 기술자'라고 한 게 눈에 띕니다. 김기춘 씨도 알아야 하지만, 그의 스승 격인 신직수 씨도 알아야 하지요. 법을 칼처럼 휘두르는 이들은 이제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 에르고숨 2018/09/22 00:28 #

    그렇죠. 신직수-김기춘-(우병우)로 이어지는 법 기술자들이요. 신직수가 김기춘을 계속 데리고 다니며 키운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역사의 뒤안길에서나 볼 이름일 줄 알았는데, 1970년대로 타임슬립하려던 지난 정권 청와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런 ‘테크니션’들 이제 그만 보기 위해서라도 사죄와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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