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탐정(OED) + 매일단어(MWU) NoSmoking

단어 탐정10점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10점



어쩌다 보니 ‘사전 책’ 두 권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과 미국 메리엄 웹스터 사전(MWU) 이야기다. 각각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 사전부에서 37년 재직하고 은퇴한 존 심프슨과, 메리엄 웹스터 사전 제작사에서 20년째 재직 중인 코리 스탬퍼가 썼다. 원서 출간년도가 나란히 2016년과 2017년. 번역본이 꽤 빨리 나온 셈이다. 두 권 다 기막히게 멋지다. 이야기보따리가 어찌나 충실한지 배가 다 부르다. 지적이고 인간적이고 감동스러운데 유머까지 가졌다. 이런 글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교수와 광인>에서도 본 바, 사전의 역할은 ‘깨끗한’ 언어를 수호하거나 지시하는(‘규범주의’) 게 아니라는 점. 단지 사용자들의 말을 관찰하여 정리하고 기록한(‘기술주의’) 자료라는 점. 게다가 요즘 들어서는 온라인으로 더욱 민주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는 점 등을 공히 볼 수 있다. 내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시대 변화가 단어 정의에 반영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알려지게 된 것의 이익과 불이익을 인지하게 되었다. 성중립적 접미사로서의 -person 표제어를 작업하고 racism과 sexism 항목도 다시 검토했으며 머지않아 사전에 등재된 ablism, lookism 같은 새로운 -isms 단어들도 계속 지켜보았다.’(<단어 탐정>, 97) 또 다른 예로, MWU의 경우는 눈물겹기까지 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저자 모두 언급하는 ‘marriage’다.


사전에 동성 결혼의 의미를 실은 건 메리엄 웹스터가 대형 사전 제작사 가운데 꼴찌였다. (...)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기존 정의(“the condition of being a husband or wife; the relation between persons married to each other; matrimony(남편이나 아내인 상태; 서로 결혼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혼인)”에 해설을 덧붙이는 쪽을 택했다. “이 용어는 현재 동성 파트너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일컬을 때에도 쓰인다.” 여기에 ‘gay’가 상호참조로 올랐다. (<매일 단어>, 312-313/353)


왜 눈물겨웠느냐고? 우리나라 게이 퍼레이드 행사 때 꼭 맞불 집회하는 보수단체들 있잖은가. 그이들의 항의가 MWU에 쏟아진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누군가의 성 지향이나 결혼에  있어서 (나는 결혼제도에 반대하는 편이나 결혼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그것도 (성경이 아니고) 사전 표제어 정의에 대해서이니 대표적이고도 비뚤어진 ‘규범주의’가 아닐까 싶다. 사전이 동성 결혼을 만드는 게 아니고 당신들(우리)이 언어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음이다. 예상 가능하지만 내처 한글사전 ‘결혼’을 본다.


결혼[結婚]: 1.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2.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다 (다음어학사전)


2번은 동성도 포함한다는 얘긴가. 네이버 사전과 내가 가진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그리고 크레마 프라임 사전에는 모두 2번이 아예 없다만. 당연하겠다. 아직은. 기술주의라니까. 예전에는 한글사전에 ‘사랑’인지 ‘연애’인지에도 이성상대의 의미가 들어가 있어 놀랐던 적 있었는데 지금 보니 모두 ‘상대방’이나 ‘두 사람’ ‘다른 사람’ ‘어떤 대상’으로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규범주의자를 놀라게 할 단어 얘기를 또 해보자. 소위 ‘나쁜 단어’ 말이다. OED 존 심프슨은 ‘fuck’을 공들여 설명한다. 이보다 진지할 수 없게. 읽는 나도 덩달아 사뭇 진지하게 ‘fuck’ 공부하게 된다.


이어서 MWU 코리 스탬퍼는 ‘bitch’를 들고 나온다. 역사적이고 역동적이다. 조 프리먼의 <빗치 선언문>으로부터 시작된 ‘언어 되찾기’ 과정까지 담겼다. ‘언어 되찾기란 비방 받는 집단이-여성, 게이 남성, 유색인종, 장애인-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노여운 비방 표현을 스스로 당당한 정체성 표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억압자의 권력을 없애는 수단이자, 자신에게 날아오는 언어적 화살을 붙잡는 것과 같다.’(<매일 단어>, 214/353)  요즘 우리말 ‘메갈’의 경우와 상당히 비슷한 듯도 하다. ‘메갈’에 비하의 의미가 다분히 스며  있음을 사용자와 대상자들은 알 것이다. ‘언어적 화살’을 어떻게 되돌려 무기로 쓰게 될지는 차차 지켜볼 일이겠다.


사전 편찬업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유복하고, 교양 있고, 나이 든 백인 남자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여성 사전 편찬자가 남성보다 더 많지만, 사전 편찬업의 지형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고루하다. (…) 1956년 대니얼 쿡은 ‘bitch’의 두 번째 의미가 사실은 폄하 의미라는 걸 보지 못했다. 1992년 프레드 미시도 마찬가지였다. ‘bitch’가 여성에게 쓰일 때 폄하 표현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두 사람은 직접 ‘bitch’라고 불려본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매일 단어>, 225/353)


‘현대 사전 편찬자들은 객관적이 되도록, 개인적으로 지닌 언어적 짐은 문간에 내려놓도록 훈련 받는다’고 이어진다. 그러나 사실은, 사전을 펴 보는 많은 사람이 잊고 있겠지만, 언어 사용 용례를 낱낱이 점검하고 정리하고 정의를 내리는 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언어는 깊숙이 개인적이며 사전 편찬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코리 스탬퍼에게는 ‘bitch’가 그랬고 존 심프슨에게는 ‘Angelman syndrome’과 ‘레트 증후군’이 그랬다. 심프슨의 딸 엘리가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병명들로, 심프슨이 사전에 넣었다. 보통은 넓은 범위의 증후군이나 질병을 사전에 수록하지 않는다는 전통 또는 중립성을 해칠 위험이 있었음을 본인도 인정한다. 심프슨은 이렇게 덧붙인다. ‘내 개인적인 삶의 불확실한 부분이 괴물처럼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OED의 중립적인 절차를 집어삼켰다.’(<단어 탐정>, 245)


모두에 ‘인간적’이라고 썼던 이유가 이것이다. ‘이 안에 사람 있어요’는 사전에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제 사전을 펴 볼 때 더 따뜻한 눈으로 보게 될 성 싶다. 단어 하나하나에,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나 틀림없이 나보다 훨씬 분석적이고 냉철하고 똑똑할) 어떤 사람의 손길이 스쳤음을 배웠다. <단어 탐정>을 열면 20대 초반 나이의 사전 편집 어시스트 존 심프슨을 만났다가 책을 덮을 때 60대 편집장 존 심프슨에게 인사하게 된다.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OED의 역사와 심프슨 개인사가 다 흘렀다. 마법의 글쓰기다. 사족 하나 붙이자면 <단어 탐정> 331쪽 번역문에 ‘여류 소설가 에드나 페버’라고 되어 있다. 1980년대에 이미 성중립적 직업 명칭을 작업한 저자의 문장을 이렇게 옮긴 건 좀 무심한 번역이었지 싶다. 몇몇 작가들 이상한 이름표기도 눈에 띄었고. ‘존 드리덴’(78, 존 드라이든) ‘에블린 와프’(80, 이블린 워)


공교롭게 공히 사전 출판부에 면접 보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공히 몇몇 단어들의 역사적 의미 변화를 짚어주며 공히 사전은 언제나 삶에 뒤처지므로 출판되자마자 낡기 시작함을 알려주고 공히 100여 년 전부터 이어져온 ‘크라우드소싱’ 독자들과의 소통에서 느낀 뿌듯함을 전해주며 공히 사전 편집은 ‘읽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함을 얘기하고 공히 동료들을 따뜻하게 이름으로 호명하여 거론하고 공히 사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며 공히 유머가 넘치면서 지적인, 각각 ‘무해한 노역자’ 두 사람의 책이다.


Lexicographer: A writer of dictionaries; a harmless drudge, that busies himself in tracing the original, and detailing the signification of words. (Samuel Johnson)




<교수와 광인>은 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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