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 쓰는 400자평과 발췌문 Smoking

보트 위의 세 남자 - 8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문예출판사

 

몽모렌시 역시 내내 같이 있었다. 몽모렌시가 삶에서 추구하는 야망은 훼방을 놓고 욕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옴죽거리다가 완벽하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의 대가리에 아무것이나 막 집어던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하루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 (72/437)


몽모렌시는 개다. 원제 <Three Men in a Boat: To Say Nothing of the Dog>으로부터 번역제목 <보트 위의 세 남자>로 오는 사이 탈락한 부제 속 그 개 되겠다. 코니 윌리스 소설 <개는 말할 것도 없고To Say Nothing of the Dog>가 이걸 따온 제목이라는 사실은 알라딘 리뷰에서 보고 알았다. 최근에도 어느 책에서 등장인물인지, 작가인지가 <보트 위의 세 남자>를 언급했는데…… 맛있게 까먹었다. 메모해 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텐데, 했던 기억까지도 나나 해당 작품은 영영 링크 불가 상태가 돼버렸다. 좌우간, 제롬 K. 제롬의 세 남자+개 한 마리는 보트 위에서 무얼 하나? 독자를 웃긴다. 유유자적+좌충우돌 템스 강 유람기. 키득키득 마음 놓고 웃고 싶다면 추천한다. 템스 강 지도와 함께 해도 좋을 듯.


해리스가 돛을 내리자, 상황 파악이 됐다. 우리가 너벅선을 박는 바람에, 세 노신사가 의자에서 넘어져 보트 바닥에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힘이 드는지 끙끙 소리를 냈고, 몸에 척 붙어버린 물고기들을 떼어내며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우리를 저주했다. 마구 내뱉는 일반적인 저주가 아니라, 길고 오랫동안 생각한 포괄적인 저주로서, 우리의 이력 전체를 아우르고 먼 미래까지 내다본 데다 가족 친지들은 물론이고 우리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내용이 풍부하고 품질이 고급스런 저주였다. (232-233/437)



아름답고 죽은 그녀 - 8점
로사 몰리아소 지음, 양영란 옮김/열린책들


강변 산책로 관목더미 속 ‘아름답고 죽은 그녀’를 본 사람은 한 명이 아니다. ‘이 장소는 사전 조사에 따르면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 등에 있어서 각기 다른 다양한 인물 군이 지나다니는 것으로 확인된 곳이었다.’(128/137) 다양한 그들 개인사와 사연이 그려진다. 당장 경찰에 알릴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을 가진 것만도 아니더라만. 왜 그럴까, 왜. 이른바 제노비스 증후군이란 게 있겠고, 제노비스 증후군이 실제 사건보다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는 의견도 있겠고, 그 속엔 ‘당장 신고하겠어!’ 하는 나도 있겠고, 그러나 실제 상황에 처하면 과연 그럴까, 갸우뚱하게도 되는 ‘연극’ 식 논문+소설.

「너 혹시 이 시(詩) 기억나? 입술을 물어뜯긴 채 영안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여자의 시 말이야, 쥐들이 그 여자 뱃속에서 새끼를 낳아서, 어린 쥐들은 여자의 간을 파먹고, 여자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산다는 그 시…….」(…)
「빌어먹을, 발렌티나, 너 정말 왜 이래, 어떻게 그토록 음울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다 기억하는 거지?」
「난 고트프리트 벤의 시들은 잘 기억하거든, 네가 네 고객들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거나 똑같은 이치지.」 (37/137)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 10점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열린책들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그 인간의 심장,(…)Ce qu’est le cœur de Simon Limbres, ce cœur humain,(…)’(7) 단도직입 첫 문장에 심장. 프랑스어 심장cœur의 œ는 공교롭게 정말 심장을 닮지 않았는지? ♡보다 더. 병원 모니터에서는 심전도 그래프로 해석해 그려주는 그것. 표지 그림이 왜 이런지 당장 알게 되는 도입부다. 시적인 문장이 현란하다.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아마존에서 첫 페이지만 봤다. 오, 맙소사. 첫 장이자 첫 문단이자 첫 문장이 쉼표투성이 한 문장(1문장)이다. 번역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내가 다 힘겹다.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 급하게 거두고) 신파로 푹 빠지지 않는 진행이 고맙다. 왜냐하면 기증자가 있으면 수령자(‘수혜자’라고 하기가 조심스럽다)도 있는 법. 죽은 자가 있고 덕분에 사는 자도 있는, 아 고맙고 아픈 이승. 장기 이식이다.


그녀는 부당한 특권 같은 것을, 복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마치 장터 축제에서 유리 뒤에 뒤죽박죽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 가운데서 선택을 받아 집게로 집어 올려진 천 인형인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결코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없으리라. 바로 거기에 이야기의 전부가 담겨 있다. 그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마워요. 그 찬란한 말은 허공으로 떨어져 내리리라. (313)


 
세상이 잠든 동안 - 8점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문학동네


읽고 나니 띠지 문구 ‘미발표 단편집’이 ‘그러게, 미발표라고 했지?’로 읽힌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 전작하는 것만큼은 아니어서(‘말괄량이 길들이기’ 같은 건 없어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소소한 재미 삼아 읽기에 나쁘지는 않다. 다만 장편 몇 개와 <나라 없는 사람> 이후 내게도 매우 독특한 자리를 점하고 있던 보니것이 갑자기 (덜 독특하게) 가까워진 느낌. 어떤 식이냐 하면 셜리 잭슨, 어니스트 헤밍웨이, 로알드 달, 레이먼드 카버를 두루, 어설프게 품고 있는 식으로. 다시 말해, 왠지 보지 말아야 했을 ‘초고’를 보아버린 듯한 감상이랄까. 좋게 말하면 확장된, 나쁘게 말하면 훼손된 보니것 맛.


스튜디오 앞문에서 소리가 났다. 밖에 병든 짐승이라도 왔나 싶었다. 라사로는 가열차게 계속 그림을 그렸다.
다시 소리가 났다.
라사로는 가서 문을 열었다.
밖에 스테드먼 공이 서 있었다. “만약 내가 곧 목이 매달릴 사람 같아 보인다면, 내 기분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오.”
“들어오세요.” 라사로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387,「사기꾼들」)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8/10/05 15:05 # 답글

    <보트 위의 세 남자>는 위시 리스트에 있으면서 잊혀진 지 한참 됐는데, 다시 욕구가 무럭무럭... 저 되게 오랜만에 왔죠? ㅋㅋㅋ 여전히 많이 읽고 계시네요^^
  • 에르고숨 2018/10/05 16:39 #

    ㅋㅋㅋㅋ그러게요, 사다리 님 되게 바쁘셨나 봐요. <보트 위의 세 남자>는 저도 오랫동안 숙제처럼 여기다가 에랏 치우자 하는 마음으로 읽었어요. 짧은데다 술술 읽히니 사다리 님도 얼른 해치우세요, 별 거 아닌 책 되게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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