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책+바다 한가운데서+모든 것은 빛 NoSmoking

사악한 책, 모비 딕 - 10점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저녁의책

 

사악한 책을 한 권 썼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린양처럼 순진무구하다고 느낍니다.” (1851년 11월 멜빌이 호손에게 쓴 편지. <모든 것은 빛난다> 257, 강조는 나)


멜빌, 포경업, 그리고 19세기 초반 세계 고래잡이 산업 중심지였던 낸터킷 섬 전문가 너새니얼 (호손 아니고) 필브릭이 썼다. 어떤 소재를 취하는 자격 같은 게 있다고 할 수야 없지만 필브릭 만큼 마침맞은 저자가 없겠다 싶은 ‘모비 딕 읽기’다. 작고 빼곡한데다 존경과 애정이 넘친다. <모비 딕> 안과 밖을 넘나들며 전해주는 이야기가 유익하고도 흥미롭다.


소설 밖 얘기로는 멜빌과 호손 사이 친분 및 편지왕래 사연이 특히나 좋은데, 저자 필브릭 역시 ‘나는 독자들에게 『모비 딕』만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만들어낸 개인적 예술적 힘을 이해하려면 이 편지들을 꼭 읽어야 한다.’(111)고 쓴다. 두 작가 사이 성격과 태도 차이가 얼핏 보아도 삐그덕. 이런 표현 어떨지 모르겠는데, 멜빌은 개 같고 호손은 고양이 같다. 개가 귀찮게 하면 고양이는 놀아 주기는 하나 개가 귀찮게 굴지 않으면 더 만족하는 격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상하게 호손에 대한 관심이 더 인다. 내가 고양이파라서 그런 모양이다.


미국 포경산업의 흥망성쇠와 멜빌의 선상 경험, <모비 딕> 모티브가 된 에식스호 난파 등이 소설 밖 얘기라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 설명도 충실하다. 원작 장면과 발췌문장 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훌륭한 서평을 이룬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신이 나서 소개하고 자랑하는 느낌. 원작을 읽지 않은 이가 보기에(도) 전혀 무리 없을 뿐 아니라 초대 받은 기분이 들게 한다. 소설 하나로 서평 ‘한 권’을 써내는 능력이 부럽고 좋다. 벽돌 같은 <모비 딕>을 <사악한 책, 모비 딕>으로 퉁 치려고 했다면 (나인가?) 오산이다. 오히려 입맛이 돌게 하는 아페리티프로 작용한다. 식전주 마셨으니 이제 정식을 들 때가 된 건가. 아니 아니 그 전에 전채요리.


이슈메일은 이렇게 전한다. “아름답고 온화한 푸르른 날이었다. 반짝이가 박힌 듯한 바다는 잔잔하고 서늘했고 금박 세공사가 최대한 얇게 두드려 편 박편처럼 사방으로 평평하게 수평선까지 뻗어 있었다. (…) 3분도 채 되지 않아 핍과 스터브 사이에 망망대해가 가로놓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가엾은 핍은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를 해 쪽으로 들었다. 해도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지만 핍과 다를 바 없이 쓸쓸하게 버려진 존재였으니.” (90, 강조는 나)


바다 한가운데서 - 10점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한영탁 옮김/다른


앞에서 부연하지 않은 저자 소개. 호손과 같은 이름을 가졌고 낸터킷에 이사 가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너새니얼 필브릭이다. 에식스호 난파 사건을 다룬 논픽션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모비 딕> 결말 이후 실제로 벌어진 지난한 과정이 담겼다. 읽어내기가 무척 괴롭다. 흥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선원들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서다. 괜히 물을 벌컥벌컥 마시게도 된다. 대충은 알려진 이야기임에도, 해도와 포경선 도면, 삽화까지 실린데다 이름을 가진 실제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대하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아프다.


생존자들의 이후 행적, 사망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극한 갈증과 굶주림, 고래, 바다, 포경산업과 낸터킷 섬의 역사에 관해서도 많은 자료 연구를 거친 듯 빼곡하다. 또한 1820년 에식스호뿐 아니라 유명한 난파 사건들이 군데군데 언급된다. 메두사호(1816년), 바운티호(1789년), 인듀어런스호(1914년) 등이다. 이상하다. 스포 염려가 더 되는 논픽션이다. 그러니까 두루뭉수리, 누구는 살았고 누구는 죽었다. 삶의 마지막이 망망대해 표류라는 것만큼은 가장 상상하기 싫다는 말을 끝으로, 갈증이 심한 가운데 전채요리 먹었으니 이제 정식을 들 때가 된 건가. 아니 아니 그 전에 앙트레.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사월의책


<모든 것은 빛난다> 6장에서는 <모비 딕>을 빛낸다. 포스팅 맨 앞에서 인용한 멜빌의 편지글 ‘사악한 책’을 화두로 삼는다. <모비 딕>이 사악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둠을 깊이 꿰뚫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교도와 식인주의를 배척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밀턴의 <실낙원> 사탄과 꼭 닮은 에이해브에 독자가 공감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단 한 가지에 미쳐있는 에이해브의 일신론적 광신이 자칫 허무주의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우주의 궁극적 스토리는 우주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는 데 있지 않다. 비록 핍과 에이해브의 신처럼 우리에게 무관심한 신도 있지만 말이다. (…) 하지만 핍의 신과는 달리 세상에는 또 다른 신들, 즉 즐겁고 성스러운 신들과 사악하고 복수심에 차 있는 신들도 있다. 우주는 번갈아가며 이런 신들의 모습을 띤다. 우주가 그 신들 가운데 궁극적으로 어떤 신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하나의 신도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신들의 만신전일 것이다. (320-321)


<사악한 책, 모비 딕>보다 어렵게 읽힌다. 예컨대, ‘책이 거의 4분의 1 정도 진행되어서 28장에 다다를 때까지 에이해브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조스Jaws>의 상어처럼, 에이해브의 등장은 지연되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다.’(<사악한 책, 모비 딕>, 39) 같은 대중적인 문장이 없다. 대충 읽을 책이 아닌데 대충 읽었더니 후과가 크다. <모비 딕>으로 초대한다기보다 왠지 코앞에서 문을 닫는 느낌이랄까, 앙트레라기보다는 무척 고급스러운 디저트 격. 아무려나, 이제 정식을 들 때가 된 건가. 아니 아니 그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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