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머나먼 섬들+다윈의 섬 NoSmoking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 8점
프랑수아 아르마네 지음, 김희진 옮김/문학수첩


작가들이 가져온 책 세 권씩으로 꾸린 도서관이니,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이다.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서지분류 문학, 고전이 많고 실용서가 가끔 보인다. 전화번호부는 실용서인가 아니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염려가 크지 않았던 시절 유물이니 고문서인가. 뒤표지에까지 실린 움베르토 에코의 선택이 그것인데, 전화번호부를 고른 작가가 한 명 더 있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곰곰 생각해보니 2000년대 초반 프랑스 전화번호부에는 내 이름도 게재됐다. 리스트에 넣지 말라고 특별히 요금을 내지 않는 이상 예외 없이 다 실리던 관행이었다. 해당 시절 고문서라면 꼼꼼하게 읽어보는 재미가 없지도 않겠다. 당시 짝사랑했던 사람 이름도 찾아보고 작가 예술가 유명인 이름도 찾아보고 명기된 주소로 그 시절 우리 사이 거리도 짐작해보고. 구조선이 오는지 바다를 틈틈이 살펴보기에도 그만이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고른 경우에 밑줄 쳤고, (내가) 모르거나 관심 없던 작가라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 들고 온 경우 밑줄 쳤다. 전자는 마이클 커닝햄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대로>, 그리고 ‘백지로 이루어진 책’을 갖고 참여했다. ‘거기에 글을 쓰지 않고, 백지로 간직하겠다. 이따금 그것을 바라보며 내가 가져올 수 없었던 모든 책과, 앞으로 쓰일 모든 책을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리라.’(063) 역시 멋지다. 또한 커닝햄은 ‘프루스트를 프랑스어로 읽을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도 썼는데, 나, 읽을 줄 안다…… 아나? 음. 프한사전이 소중한 세 권 중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겠구나. 감수할까? 버지니아 울프가 남은 한 자리를 맡을 것이고. 오, 맙소사. 유르스나르는 어떡해.


다름 아니라 내가 밑줄 친 후자 경우로 카멜 다우드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언급했다. 카멜 다우드는 <이방인>을 아랍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다시 쓴 작가다. <뫼르소, 살인 사건>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세 권 중에 넣는 작가라면! 하는 믿음으로 다우드를 보관함에 넣었다. 무인도 도서관에 꽂힐 작가 성별 비율을 고려해 울프와 유르스나르는 내가 꼭 가지고 가고 싶은데. 이런, 베케트는 또 어쩌지. 굉장히 매력적인 책 <바틀비와 바틀비들>을 쓴 엔리케 빌라-마타스가 <몰로이>를 들고 나와 더 좋아져버렸으니. 프루스트(프)+프한사전+울프냐, 프루스트(한)+울프+유르스나르냐, 울프+유르스나르+베케트냐, 혹은 그냥 한 권, 크레마마 님을 들고 가면 안 될까, 라고까지 써보며 혼자 끙끙대다가 앗.


응우옌 후이 티엡 : 책이라고? 무인도에서? 뭐 하러? (172)


(고맙습니다.)


무인도 도서관을 위한, 가뿐하고 우아한 백조 세 권을 추리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내 알라딘 보관함의 땀나는 발짓이다.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번역본이 하나밖에 없다),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축약본밖에 없다), <라마야나>, 앞에서 얘기한 <뫼르소, 살인 사건>이 더 들어갔다.


요른 릴 : 1950년대 초, 나는 그린란드 북동쪽의 무인도에서 홀로 18개월을 지냈다. 탐험 기지에서 보유한 책은 세 권뿐이었다. 무선 방송 기술 실습 교본, 1,200쪽짜리 원거리 통신 규약집, 그리고 그린란드의 젊은 주부들을 위한 요리책. 섬에 다른 읽을거리는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그 책들을 속속들이 읽었고, (…) (197-198, 강조는 나)


요른 릴은 <북극 허풍담>의 작가다. 그이가 머물렀다는 무인도가 혹시 아래 책에 등장하는지? 후보는 북극해 비에른섬으로 좁혀졌으나…… 중요하지 않다. 지구에 섬이 얼마나 많으며 또 얼마나 숱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지 50개 섬만으로도 매혹당한 <머나먼 섬들의 지도>다.



머나먼 섬들의 지도 - 10점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권상희 옮김/눌와


띠지에 이렇게 쓰였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바깥세상을 잊게 될 것이다.’ 옳지. 옳다. 어찌나 조용하고 특별하고 딴 세상 같은지 막 바다에서 빠져나와 발에서 모래를 털고 이 자리에 돌아와 앉은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역사서도 지리서도 아닌, 이야기책일 터인데 역사와 지리를 포괄한다. 작가의 성향을 잘 알겠고 매력 만점이다. 구구절절 설명은 내 몫이 아니라는 식의 서술. 한 말보다 없앤 말이 더 많을 것 같은 과묵함. 나머지 정보는 당신이 알아서 취하라, 나는 아름다움을 담당하였다, 라고 할까. 아름답다, 아름답다.


이와 비교해 자연을 국가 단위로 나누지 않는, 인간이 만든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지도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지형학의 눈으로 보면 육지는 저지대의 짙은 녹색, 고산지대의 적갈색, 또는 극지방의 빙하의 흰색으로 빛나고 바다는 다양한 음영의 푸른색으로 어슴푸레 빛난다. 이런 지도는 역사의 흐름에 구속받지 않는다. (9, 머리말)


책 속에 지도가 충분히 등장하는데도 굳이 구글지도를 또 띄워놓고 보는 건 나만이 아니겠지. 우리 모두 지도맹(?)이라고, 샬란스키 지도가 알려주는지도 모르겠다. 형형색색 각기 다른 면적과 선명한 국경이 없으니 매우 ‘불편한’ 지도임이 맞다. 맞는 만큼 우리는 여태 지도가 아니라 정치나 특정 해석을 보아왔던 것이라고, 민트색 바다와 회색 음영이 말하는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기존 신화나 설명에서 심심찮게 보았던 ‘세상의 배꼽’이라는 표현을 손쉽게 처리한다. 지구는 둥그니 당신이 있는 곳에서 '여기'라고 하면 곧 ‘세상의 배꼽’ 아닌가. 샬란스키가 지구본에서 표시하여 보여주는 섬 위치가 그림마다 배꼽이다. 지금 당신이 거기에서 사랑을 외치면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는 거 되겠다.


각 지도에는 ‘현지어’(소속 국가) 표기가 쓰였고 부록에 ‘용어’편이 따로 있다. 그러니까 만, 곶, 갑, 강, 호수, 항구, 섬, 분화구, 해변, 절벽, 암초 등의 멋진 단어들을 러시아어, 노르웨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일본어로 볼 수가 있다. 다만, 섬지도 속에 등장하는 숫자는 도시나 마을인 것 같은데, 따로 색인이 없다. (뭔가요? 혹은 왜인가요?)


소개된 섬들 중 아마 가장 간결한 지도가 아닐까 싶은데, 하울랜드섬을 펼쳤을 때 77쪽 지도에서 ‘Earhart Light’가 유일한 활자다. 용어 편에 등장하지 않기에 사전을 찾았다. ‘Earhart: 1.Amelia, 에어하트(1898-1937) 2.1928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 3.세계 일주 비행 중 남태평양 상에서 소식이 끊겼음’(다음 어학사전) 아니나 다를까 이 사연이 소개된다. 안타깝고 뭉클해. ‘어밀리아 에어하트는 ‘오늘’이 ‘어제’로 바뀌는 날짜변경선 바로 너머에서 사라져버린다. 바다는 아무 말이 없다.’(76, 태평양, 하울랜드섬, 피닉스제도(미국))


그리고 다음 책으로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로, 쥘 베른(달 뒷면의 분화구에뿐 아니라 프랑스령 크로제제도 포세시옹섬 험준한 산에 이름이 붙었다.)이나 갈라파고스를 고를 수 있을 텐데, 우선 후자로 선택한다.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구해놓은 책이 있어서 그렇다. ‘1793년, 북쪽 만에 우체국이 세워졌다’는 낭만적인 설명에 이어 살벌한 일화가 소개된다. 1930년대 갈라파고스 제도 플로레아나 섬에서 발생한 의문스런 실종사건.


희극은 이내 범죄극으로 바뀐다. 1934년에 여남작과 필립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얼마 후 로렌츠의 유골이 이웃 섬 해변에서 발견된다. 리터 박사는 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사망하고, 오직 도레만이 살아서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전 세계 신문은 갈라파고스 사건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쏟아낸다. “범인은 누구일까?” (92, 태평양, 플로레아나, 갈라파고스제도(에콰도르))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 - 10점
조홍섭 지음/지오북



같은 섬. 다른 느낌. 다른데 각각 좋다. 기대 이상으로 성실하고 빼곡하며 담백한 책이다.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의 역사, 동식물, 지질, 해류, 기상, 여행가이드 역할에 최신 정보까지 아우르는데, 장황하지 않고 간결하게 핵심을 들려준다. 적당한 사진 자료와 도표도 보기 좋다. 버킷 리스트에 종종 등장하는 갈라파고스, 우리나라에서는 버킷 리스트도 대의제인지 최근 국회의원들 출장(이라 쓰고 외유라 읽는) 방문이 잦았던 곳이다. 줄줄 새는 세금 포함 내 돈으로 사서 읽었다.


가마우지는 물속을 잠수해 물고기나 문어 등을 잡아먹는 비교적 큰 물새이다. (…) 만일 먹이나 번식지를 찾아 멀리 이동할 필요가 없고 천적도 없다면 가마우지는 어떻게 진화할까. 세계의 가마우지 40종 가운데 유일하게 날개가 없는 갈라파고스가마우지(Phalacrocorax harrisi)가 그 답을 제공한다. 이동과 도피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다면 비행은 가장 먼저 포기할 대상이다. (174)


대륙에서 1,000km쯤 떨어진 (적절한) 거리와 격리가 갈라파고스의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소위 ‘갈라파고스화’라는 표현은 잘못 쓰이고 있는 시사용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옳구나. 이런 은유적 표현은 주로 정치인들이 자주 쓰던데, 대의제 버킷 리스트 실현했으면 시사용어라도 제대로 써 주셔라. 하여튼, 적절한 거리 조건으로 대륙에서 이동해온 생물들의 조상이 이 대양섬에서 토착종으로 진화한 결과가 현재 모습이다. 자연사로 보자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의 변화여서 관찰, 가정, 결론이 퍽 용이한, 자연실험실 같은 느낌. 물론 부침이 많았다. 갈라파고스땅거북과 갈라파고스물개 등의 남획과 외래종 유입이 그것이었다. ‘보전’이라는 말이 ‘생태계 여행’과 어떻게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지가 관건이겠다.


외래종 유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환경 파괴가 매우 걱정되는 곳에 굳이 몸소 가는 것보다는 책으로 여행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휴가철 책으로 최고다. 내 책에는 더구나 얼굴 박고 낮잠 잔 흔적이 구불구불한 책장으로 남았다. (침 아니다, 땀이다.)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가 더 좋아진 이유는, 다음 책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도 톡톡히 하기 때문. <무인도의 이상적인 도서관>에서도 꽤 많은 작가들이 들고 왔으나 내가 애써 외면했던 멜빌 되시겠다. 이제 영접할 때가 된 건가. 아니 아니 그 전에…….


아마도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미국 포경선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1819~1891)일 것이다. (…) 멜빌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 20살 때 원양 선박의 선원이 되어 대양을 떠돌았다. 그는 포경선 애쿠시넷호를 타고 남아메리카와 태평양을 항해하곤 했는데 1841년과 1842년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른 적이 있다. 멜빌은 이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1854년 갈라파고스에 관한 10가지 단상을 모은 소설 『엔칸타다스』를 발간한다.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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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08/13 20:33 # 삭제 답글

    지금 막 요른 릴의 북극허풍담 책 소개 보고 오는 길인데 여기서 또 만나기, 찌찌뽕 ㅋㅋ 품절이더군요. 머나먼 섬들의 지도는 장바구니에 안착. 어쩐지 실물로 만나야 좋을 것 같은 책인데 역시 전자책으로는 안팔아요. 그래도 나 이제 실물책 살 수 있다!! 이번에 가면 오래 있을거라 ㅋㅋ
    무인도 책은 다른 누군가가 식용식물사전 이런거 언급해놨던데, 저도 뭔가 스페인어 사전 하나, 마르케스 책 하나, 실용서적 (무인도에서 살아남이 뭐 이런? 존재한다면?) 이렇게 가져가면 어떨까 싶네요. 사전 진짜 좋은 아이디어다 ㅋㅋ
  • 에르고숨 2018/08/13 22:13 #

    북극허풍담은 알라중고에서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걸요? 저번 제 책나눔리스트에 있었능데; 아무튼 찌찌뽕.ㅎㅎ 머나먼 섬들의 지도는 정말, 진심, 강력 종이책으로 보시길 권해요. 담담하게 예쁜 색을 보셔야 함. ( 전자책 없어서 오히려 다행이다.ㅎ)
    문학으로는 마르케스를 택한 셈이군요! 이히히 마르케스 원서로 읽는 맛 좋겠어요. 그리고... 뽀 님 왜 다윈의 섬에는 관심도 안 가지시는 거죠?! (매우눈밝은뽀필터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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