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바캉스에 맞춤한 제목과 장르다. 차진 구어체가 쭉쭉 끌어가는 이야기에다, 시골 풍경과 일상이 깨알같이 핍진하다. 약간 유치한 면도 없진 않으나 갓 20대가 된 주인공 화자를 감안한다. 능청맞고 직설적이며 현실적이고 현명한 행동파 80세 어르신이 다른 쪽에서 무게를 잡아주니 균형이 잘 맞는다. 무엇보다 영리한 장치는 각 장 끝에 짧게 등장하는 가해자의 기록 격인 ‘주마등’ 편들로,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힘을 부여한다. 과도한 유머와 가벼운 어투가 내 취향과 맞지는 않지만, 결국 ‘아무 것도 아닌 헛소동’ 식으로 흐르지 않는 결말은 제법 묵직하다. 단 한 군데 밑줄 그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기적이다. 지구상에 단백질이 처음 생겨나고, 생명체가 등장하고, 물속 생물이 육지생활을 시작하고, 원숭이를 거쳐 인류가 등장해 강무순에게 전달될 때까지 나의 DNA는 수억 년을 무사고 배달된 셈이다. 그 숱한 죽을 뻔한 고비를 숱한 행운과 숱한 구남이들의 도움으로 이겨낸 위대한 기적. 생존하는 모든 생물은 기적의 결과물이다! 말해놓고 보니 무슨 사이비 종교 지도자 같구먼. (148-149/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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