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월기 Smoking

산월기 - 8점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문예출판사


‘중국의 고담’ 9편, ‘식민지 조선의 풍경’ 3편이 묶였다. 중국 고담이라는 소재 자체에서 느껴지는 할배 냄새가 나쁘지 않구나, 했는데 맙소사. 33세에 요절한 작가다. 일본인으로 경성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이력 소유자 나카지마 아쓰시. 젊은이가 썼다고는 믿기 힘든 원숙미에다, 단편들이 각각 매우 다채롭다. 최근 들어 한자를 가장 많이 구경한 책이다. 왕년엔 한문 과목 시험 곧잘 만점 받곤 했던 나(그렇다, 한문 수업 강력하게 시켰던 교육정책 세대다), 어느새 맛있게 까먹고 지냈음을 알게 됐다. (마법천자문 세대 조카와 놀아줄 때도 뼈저리게 느꼈던 바, 마법천자문 만세다) <산월기>에서 한자를 읽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수두룩하게 병기해준 한자가 왠지 반가웠다는 얘기. 같은 이유로, 독서 첫 관문이 꽤 높을 수도 있겠다만 익숙해지니 묘미가 있다.


중국에서 옛날부터 행해진 주요 체형으로는 네 가지가 있었다. 얼굴에 먹으로 글자를 새기는 경(黥), 코를 자르는 의(劓), 발을 자르는 비(剕), 생식기를 절단하는 궁(宮)이다. 넷 중 셋은 무제의 조부인 문제 때 폐지되었으나 궁형만은 그대로 남았다. 궁형이란 물론 남자를 남자가 아니게 하는 기괴한 형벌이다. 이것을 부형(腐刑)이라고도 하는 것은 상처가 썩은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썩은 나무처럼 완전한 남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형을 받은 자를 엄인(閹人)이라고 칭하며, 궁정의 환관 대부분이 이들이었다. (44/339, ‘중국의 고담’,「이릉」)


코(鼻) 옆에 칼(刂)이 있는 ‘코 벨 의(劓)’ 좀 보시게. ‘ㅂ’ 라임의 ‘발 벨 비(剕)’는 또 어떻고. 발췌문은 물론 사마천 얘기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건 알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소설로 읽으니 더 감명 깊다. 소신(所信)을 지키고 수사(修史)의 소명(召命)을 다한 사가(史家). 궁형(宮刑)의 고통 속에서도 작(作)을 경계하고 오로지 술(述)하고자 했던 태사(太史)의 진면모(眞面貌)가 고스란하다. 일본 작품을 펼치면서 사마천과 이릉, 공자와 자로 같은 이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이 외에도 활쏘기 명인 이야기나 문자로 인한 화(禍), 모든 걸 다 바쳐 얻고자 한 대상을 얻고 나니 찾아드는 허무함 등 모두 쓸쓸하면서도 아련하다. ‘식민지 조선의 풍경’에 와서는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 그 또한 멋지니, 작가의 요절이 아깝고 야속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조 군은 사실 (자신이 반도인이라는 것보다도) 친구들이 그것을 항상 의식하며 동정적으로 자기와 놀아주고 있다는 점을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때로는 그가 그러한 의식을 하지 않게 하려는 교사와 우리의 배려까지 그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즉 그는 스스로 그것에 구애받고 있었기에 역으로 밖으로 드러난 태도에서는 조금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며, 더욱 자신의 이름을 밝히거나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226-227/339, ‘식민지 조선의 풍경’, 「범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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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 : 기러기 2018-06-28 22:24:39 #

    ... 기분만 나쁘게 한다. 19세기라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독자가 남자뿐인 양, 객체화되는 다른 쪽 성이다. ‘별로 소개되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을 유물이라 생각한다. 『산월기』 역자가 링크해준 「성적 인생」을 보기 위해 참고 다 읽었다만, 지루해서 혼났다. 매력 없다. 한 사람의 인생, 더 나아가 ‘성적 인생’이라면, 화자나 등장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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