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던바 Smoking

리어 왕 - 8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태원 옮김, 조지 헌터 판본 편집, 스탠리 웰스 책임 편집/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광대: 현명해지기 전에 늙으면 안 되는 거였어. (88/318, 1막 5장)


권력과 재산을 일찌감치 상속해버리면 안 된다는 교훈... 아니고. 눈멀고 귀먹어 고언은 무시하고 아첨만 좋아하다가 폭망한 왕. 눈 뜨고 귀 트이자 이미 늦었더라는 이야기. 눈머는 이와 착한 딸이 나온다는 이유로 늘 내 머릿속에서 오이디푸스와 포개지곤 하는 리어왕을 새로 읽었다. 다시 오이디푸스와 떼어놓긴 했다. 물리적으로 눈이 머는 이는 글로스터 백작이며 이이를 보살피는 사람은 착한 아들이었어. 은유적으로 눈멀고 귀먹었던 리어왕이 은유적으로 눈뜨고 귀 열자 죽음이 목전에. 너도 죽음, 나도 죽음, 모두 죽음.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어떤 변주를 보여줄지.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는다는 얘기는 새 번역을 만난다는 얘기도 될 터다. 지금도 본가 책장에 꽂혀 있을 텐데, 꺼멓고 두껍고 큰 양장 세계문학전집 ‘세로쓰기’ 판형의 예스러운 말투가 아니어서 살짝 놀랐다. 미안하지만 좀 덜 좋다. 아니면 그냥 격세지감. 번역도 번역이지만 판본 문제까지 있으니, <던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이미 ‘새로 쓰기’가 돼버린 느낌이랄지. 그만큼 열린 텍스트여서 더 재미있는 고전일 수도 있겠다. 그 왜 있잖은가, 이절판 사절판, 인쇄본 구전본, 정전 외전 기타 등등. 전공 학자와 번역가들의 노력이 셰익스피어를 가만히 두지 않는구나, 외롭지 않겠어, 셰익스피어는.


리어: 그놈들에게 리건을 해부하도록 시켜서, 그년 심장 주변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알아보자. 무슨 까닭으로 자연은 이토록 비정한 심장을 만드는 것일까?(…) (172/318, 3막 6장)




던바 - 8점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현대문학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패트릭 멜로즈>, 아니 베네딕트 컴버배치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모양인데, <던바>로 먼저 맛봤다. 세다. 오빈이 셰익스피어 중에서 <리어왕>을 선택했던 이유도 알겠다. 소위 퇴폐와 회환. ‘너도 죽음, 나도 죽음, 모두 죽음’에서 우리가 느끼는 허무보다는 회환에 더 방점을 찍고 싶었을까. 모두가 아는 당신들의 운명, 죽음까지는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뚝 끊어지는 결말도 나쁘지 않다. 든든한 원저의 힘이겠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격렬한 표정으로 윌슨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지, 찰리? 자네 아들이 어째서 내 딸이 죽는 걸 보고 있느냔 말일세. 어째서 모든 게 파괴되었나, 내가 처음으로 그 모든 걸 깨닫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어 재가 되잖아요.” 윌슨이 말했다. “그래도 진실을 말하기 원하는 누군가 살아남는 한, 그 깨달음은 소실되지 않을 겁니다.”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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