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옥타비아 Smoking

디스옥타비아 - 10점
유진목 지음, 백두리 그림/알마


 

제목에서부터 반했다. 디스토피아와 옥타비아 버틀러를 합친 듯. 마침맞다. 2059년 여름을 보게 된다. 모가 쓰는 일기다. 날짜가 거꾸로 흐른다. 리와인드되는 비디오테이프, 일기가 길어지면 지금 모에게까지, 더 길어지면 모의 탄생 순간까지 이를 것이다. ‘텅 빈 담뱃갑이 가득 차고, 식은 찻잔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164)오르는 형식이 멋지다. 내 담뱃갑이 저절로 가득 차 줬으면 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먼 훗날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 내가 만든 세계에서 나는 혼자였다가 우리가 둘인 때로 돌아온다. 그는 죽은 사람이었다가 죽는 사람이었다가 살아 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거슬러 이 세상에서 나를 없앨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모든 어리석음과 안타까움, 후회와 탄식을 처음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163-164)




농도 짙은 글에 멋진 그림들이 함께 한다. 작가의 이전 작품을 보관함에 넣으면서 한 마디 했다. <연애의 책>이길래. 사랑쟁이. 김보영 작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로 지인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해줬다면, 유진목 작가는 자신의 사랑을 기리고 선언하고 박제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151쪽 ‘ㅇㅇㅇ에게’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내게 보낸 선언도 아닌데. 아니면 나는 혹시, 부러운 건가……? 응.



1947~2006, 1963~2041, 1981~2059. 때로는 숫자만으로 깊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 미리 세운 묘비라도 다르지 않음이 이상하다. 지렁이(‘~’) 안에 다 있다. 뭔가가. 희, 로, 애, 락. 그리고 비밀, 비밀들. 완전하지 않은 세계들. <야생종>과 <킨>을 읽었다는 이유로, 지갑 안에 간직하고 있던 닳고 닳은 종이쪽지 사연을 들었다는 이유로, <디스옥타비아>를 방금 만났다는 이유로 무척 슬픈 지렁이가 되고 만다. 그나마, 아직은 꿈틀거리고 있는 지렁이를 함께 보낼 수 있어 힘이 되는 ‘81년생 모’다.


‘남자처럼’ 짧다는 것은 그야말로 옛날식 표현이다. 이제 아무도 그런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율리에게 남자처럼 잘라달라고 말하면 율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짧게 자른 머리 모양을 남자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절이 정말로 있었다. 거리에는 남자 같고 여자 같은 것들이 넘쳐났다. 남자답지 않은 것과 여자답지 않은 것은 어떻게든 반드시 문제가 되었다. 남자답지 못한 사람이나 여자답지 못한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었다.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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