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물+Axt no.017 Smoking

뱀과 물 - 10점
배수아 지음/문학동네


별점을 매길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왜냐하면 나는 글이 달려. 왜냐하면 뱀과 물 뒤쪽에 실린 강지희 평론가의 해설까지도 멋져. 보탤 말을 찾을 엄두가 안 나. 말을 보탤수록 뱀과 물에서 멀어질 것 같아. 나는 꿈을 꾸었고 꿈을 깬 게 꿈이기도 했어. 나는 죽었다가 살았다가 어렸다가 늙었다가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했어. 나는 너였다가 네가 나이기도 했어. 단편집인 듯 장편인 듯 조금씩 중첩되다가 다시 뻗어나가는 가지들. 가지 하나하나가 각각 따로 놓였을 때는 이렇게까지 매혹적이지 않았을 거야. 글이 달리는 나는 별점만 매길 거야. 짧은 메모를 남기기는 했어. 키냐르의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꿈, 순환, 리듬감. 그리고 이제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려고 해. 악스트.


모든 일은 오래전에 일어났다. 오래전에 나는 아이였다고 했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 나는 세상에 없었다고 들었다. 아니 세상이 없었다고 알았다. 내가 세상에 없을 때, 혹은 세상이 없을 때, 나는 파도 모양으로 주름진 함석지붕 오두막에 사는, 배가 터진 한 마리 개였다고 했다. 기나긴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나를 상상하는 놀이였다. 나는 내가 닭이라고 상상했다. 내가 개라고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복숭아였고, 꿈속에 늘 나타나는, 검은 물속을 헤엄치는 큰 뱀이었고, 때로는 나이든 여자들이 눈물을 뿌리는 검고 긴 공단 치마였다. (192-193,「뱀과 물」)



 
악스트 Axt 2018.3.4 - 10점
악스트 편집부 지음/은행나무

 

송종원: 사실 요번에 『뱀과 물』은 시인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어떤 율동이라든가 이미지의 연쇄 같은 것들이 시에서 봐왔던 것들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수아: 그렇다면 소설의 고유한 특징은 서사라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건가?
송: 그보다는 내가 느끼기에 『뱀과 물』은 명확한 화자가 아니라 죽음과 같은 어떤 거대한 것이 말하는 것 같더라. 황폐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말하는 것 같은, 딱 인칭화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할 때 시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 것 같다.
배: 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차이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 기분이다. 그래서, 우와, 너무 좋다.
송: 아이고. (043)


아이고. 이번 인터뷰 재미있어. 다짜고짜 질문하는 인터뷰이와, ‘질문은 내가 하는 건 줄 알고 이 자리에 왔다’(040)는 인터뷰어야. 둘 사이 ‘견고’한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옆에 (아마도 조용히) 앉아 있는 노승영 번역가와 정용준 작가, ‘원래 이러고 있’는 ‘이분들’(064) 덕분인지 인터뷰이가 편안하게 느낀 분위기가 전해졌어. 작품을 작게, 또는 크게도 만들지 않는 대화가, 주거니 받거니 좋아. 배수아 작가가 쓰곤 하는 ‘창의적 문어체’가 그대로 시행된 인터뷰 같기도 해. 다만, 급하게 편집했는지 오타가 꽤 많아. 배수아 작가 카리스마는 여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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