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별+우리들+10억 년 Smoking

붉은 별 - 8점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지음, 김수연 옮김/아고라


제목 ‘붉은 별’은 화성이기도 하면서, 붉은 색으로 상징되는 인민혁명을 완수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의미하기도 함이렷다. 작품집 속에「붉은 별」(1908년), 「엔지니어 메니」(1913년), 그리고 보그다노프가 급사하면서 『붉은 별』연작의 세 번째 소설이 되지 못한 채 짧은 시로 남은「지구에 좌초된 화성인」(1924년)이 실렸다. 「붉은 별」 내용이 이렇다. 지구를 탐사하러 온 화성인 무리는 화성 지구 간 중재인으로 쓸 만한 지구인을 간택한다. 러시아 수학자 레오니드다. 왜 러시아이고 왜 레오니드인가.


그곳에서는 생명의 박동이 더 거세게 뛰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미래를 보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 우리가 찾는 사람은 건강한 육체와 유연성 그리고 지적 노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지구에서 맺고 있는 관계가 적거나 없고, 가능한 한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적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5)

 

레오니드는, 지구와 비슷한 발전 과정을 거쳤지만 그보다 훨씬 일찍, 덜 과격하게 사회주의를 이룩한 화성을 견학하게 된다. 100여 년 잠들었다가 깨어나 미래 유토피아를 구경하는 『뒤돌아보며』 주인공이 전해주는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완전히 새롭다거나 상상 이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소박한 유토피아 정도라고, 내가 쓸 수 있는 건 순전히 내가 미래의 독자이기 때문일 거다. 1908년에 2018년 독자를 염두에 두기란, 음. 척력을 가진 ‘마이너스 물질’이 과학적 장치로 오면서 내용은 정치 프로파간다. 순수하고 갸륵하다.  지구(러시아) 정신병원장의 편지가 프롤로그인 점이 의미심장하다. 레오니드가 어떻게 지구로 돌아오게 되는지가 관건일 텐데, 읍읍읍읍. 


「엔지니어 메니」는 「붉은 별」 프리퀄 격이다. 「붉은 별」의 우주선 선장 화성인 메니 책상 위에 걸려있던 초상화 당사자가 엔지니어 메니다. 이름이 같다. 메니의 조상 메니. 앞선 작품에 나왔던 액자 속 인물이 빠져 나와 이번 작품에서 설치는 연작 되겠다. 보그다노프가 프리퀄 형식을 미리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타워즈 같고 좋다. 화성 혁명기, 이름하여 대운하시대다. 요즘 지구에서도 몇몇 관측자들이 화성 표면에서 ‘보곤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종종 본다) 운하들을 설계하고 지휘한 위대한 기술자가 메니다. 노동자, 행정가, 자본가, 기술자 들의 토론만으로는 재미없으리라는 걸 보그다노프도 알았을 것이다. 아주 살짝 드라마가 온다. 아엠 유어 파더가 웃기면 안 되는데 빵, 웃어버린 건 조지 루카스 탓이다.

 

혁명가 특유의 입씨름이 지루한 면은 있지만 세 번째 작품까지 소설화하여 『붉은 별』 삼부작으로 왔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감동이 좀 더 컸을지도. 과학소설이 아니라 프로파간다문학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과학소설이라기엔 꽤 센 체제 선전, 아니 어쩌면 과학소설이어서 가능했던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개인과 자유에 대한 응답 내지는 딴지가 보란 듯 『우리들』로 온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과 이후라는 차이가 있다.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다양성과 현대성을 낳아온 역사다.



우리들 - 8점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열린책들


『붉은 별』에서와 마찬가지로 수학자가 주인공이다. 번호가 D-503이다. 화들짝. 716은 등장하지 않는다. 1920년에 쓰였으나 출판되지 못하다가 1924년에야 영역본으로 나올 수 있었단다. 지구를 떠나지는 않았고, 먼 미래다. ‘마지막’ 혁명이 이루어진 유토피아 전체주의. 제목이 ‘우리들’인 이유다. ‘나’는 없다. 아인 랜드 『우리는 너무 평등하다』가 취한 바로 그 설정 되겠다. 모두가 각기 번호이고, 회색 옷을 입고, 같은 시간표를 살며 전체를 이루는 세포 하나씩의 역할이다.


나는 (…) 마치 친족이라도 만난 듯, 불면증, 꿈, 그림자, 황색 세계 등에 관해 지껄였다. 가위 입이 번득였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중증입니다! 당신 내부에 영혼이 형성된 게 틀림없어요.」
영혼dusha? 그것은 오래전에 잊혀진 고대의 해괴한 단어 아닌가. 우리는 가끔 <사이좋게dusha v dushu>, <무관심하게ravnodushno>, <살인귀dushegub>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영혼이라니…….
「그건…… 많이 위험한가요?」 (91-92)


‘영혼’이라 옮겨진 ‘dusha’는 아마 정신, 마음, 감정 등을 얘기할 거다. 치유되어야 할 질병이다. 행복이라는 분수의 분모를 이루는 그것. 감정이나 질투, 개성, 자유가 0으로 수렴해야 행복이 무한대에 이르니까. 예상 가능하듯, 균열이 나타난다. 감정이, 색깔이, 사랑이 슬금슬금 503에게 싹 트는 듯하다. ‘고대관’이라 불리는 ‘먼 과거의 미개한 선조들’(29), 즉 우리 독자들의 유적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미개한 영혼’을 가진 이의 희생은 영화 <색, 계>가 떠오를 만큼 강렬하다. SF 형식이 이처럼 마침맞을 수도 없을 풍자다. ‘소련’이 불편함을 느낄 법도 했겠는, 전체주의 비판 소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 8점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열린책들


작품 출간년도로 보면 『우리들』(1920년)과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1976~77년) 사이에 『안드로메다 성운』(1956년)이 위치하는데 전자 둘의 현대성에 비하면 『안드로메다 성운』은 오히려 『붉은 별』 느낌에 가깝다. 작용 반작용이나 혁명 반혁명 같은 밀고 당기기랄까. 『세상~ 10억 년』은 훌쩍 밀어버린다. 말하자면 체제 선전 선동으로써의 문학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현대성, 세련미 같은 거…… 내 생각이다. 산만한 듯 자유롭고 아기자기하면서 잘 읽히고 유머가 없지 않으나 심오하다. 왜 아니겠나, 『노변의 피크닉』 작가 스트루가츠키(스뜨루가츠끼, 스뜨루가쯔키) 형제들이다.


「적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마침내 나는 물어 보았다. 「아무튼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있잖아.」
「대기권 내에서 돌멩이가 9.81의 중력 가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원하는 자가 누구지?」
「무슨 소리야?」
「하지만 중력 가속도는 어쨌거나 9.81이지? 그리고 너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4차원 문명의 개념을 도입하지는 않지?」
(…)
「네 얘기는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 어떤 본질적인 자연 현상이라는 거야?」
「그런 셈이야.」 (148)


과학 연구를 하는 데 온 우주가 방해한다. 연구 성과가 먼 미래에 우주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이유로 우주가 자기 방어를 하는 셈이다. 10억 년 버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인가. 감시사회 풍자로도 읽히고 연극 같은 분위기가 얼핏 부조리극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실제로 과학이 당면하곤 하는 순간순간의 선택에 신중을 기하라는 경고로도 볼 수 있지 싶다. 인간과 자연에 이롭거나, 적어도 무해한 쪽으로 나아가라는 기원 같은 거. 먼 미래를 잊지 않고 염두에 두라는 거. 형제가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만들어갔을 상황을 상상하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파이프 담배 연기 속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 차, 커피가 끊이지 않고 돌았으리라. 작품 속 과학자 친구들이 그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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