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 쓰는 100자평과 발췌문 Smoking

프랑스식 전쟁술 - 8점
알렉시 제니 지음, 유치정 옮김/문학과지성사

장황하다. ‘프랑스식 수다’ 제대로다. 전쟁에서 프랑스가 벌인 패악질 고발과 반성. 무엇보다 반성. ‘우리’를 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 우리에 공쿠르상 남자심사위원만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은 든다. 번역문에서 ‘~했는데,’하는 어투 반복은 지겹고.


나는 내가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같은 장소를 쓰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우리는 같은 거리를 걸었고, 함께 학교를 다녔고, 같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먹지 않는 어떤 음식을 함께 먹었고, 그런 것들을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 함께 관련된 하나의 언어를 말했는데, 생각하기도 전에 이해하는 그런 언어이다. (…) 타인을 향해 팔을 뻗은 채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우연히 눈을 떴을 때,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을 너무나 모른다. 끔찍한 일이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44-45)


 

포르투갈의 높은 산 - 8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작가정신

포르투갈이고 이베리아 코뿔소다. 그것만으로도 좋은데, 유인원 오도까지. 얀 마텔은 사랑의 범주를 온 자연으로 넓혀주는 것 같다. 연작 형식에 고명같이 끼어든 환상 요소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 균형 잘 잡힌 한 접시.


하지만 오도와 투이젤루로 이주한 후 캐나다에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이제 그와 같은 종인 인간은 피로를 안겨준다. 그들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성미가 까다롭고, 너무 오만하고, 너무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피터는 오도의 곁에서 느끼는 강렬한 고요가, 무슨 일을 하든 생각에 잠긴 더딘 움직임이, 대단히 간결한 수단과 목적이 더 좋다. 그게 오도와 있을 때마다 그의 인간다움이, 경솔하게 서두르는 행동이, 복잡다단한 수단과 목적이 수치스럽다는 뜻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또 사실 오도가 거의 매일 그의 인간 동료들과 만나도록 끌고 나가는데도 그렇다. 오도의 사교성은 끝을 모른다. (395/451, 3부. 집)



사장을 죽이고 싶나 - 6점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아작

섹시한 제목을 죽이고 싶나 아니고, 작품에 기대가 컸나, 다. 밀실 추리물에 현대식 변주를 가하고 싶었던 야심은 알겠는데, 진부함에 그친다. 밀실 추리는 작위적이고 주인공의 비상함은 얄궂다. 죽이고 싶은 사장이 없어 별점이 박한 건 아니다.


아직 당신이 로봇에게 일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이는 극히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당신이 로봇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양안옌, 《나는 금융 엘리트가 될 것이다》 (349/403)


 

사흘 그리고 한 인생 - 8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북 트레일러 괜히 봤다. 2부 줄거리까지 다 알려주는 건 좀 아니잖나. 사전 정보 없이 읽어야 좋을 소설. 그러므로 함구하는, 4별 100자평.


앙투안은 거실 입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시선은 레미의 얼굴을 보여 주는 텔레비전 화면에 못 박혀 있었다. 머리를 단정히 빗은 레미가 미소 짓고 있는 이 사진은 지난해 학교에서 찍은 것이었다. 앙투안은 조그만 파란 코끼리 한 마리가 인쇄된 노란 티셔츠를 알아보았다.
사건을 해설하는 기자는 아이에 대해 묘사하는 중이었다. 그가 실종되었을 때 입고 있던 옷, 그가 갔을 길에 대한 가설, 등등……, 키는 1미터 15센티미터였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디테일은 앙투안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75-76)


덧글

  • 2018/05/10 08:25 # 삭제 답글

    가독성이 좋아서인가 잔인한 부분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르메트르 나온 소설은 거의 다 봤는데요, 신작이 또 나왔군요? 이 작가 참 열심히 쓰네요. 까미유 형사 시리즈 좋았는데 오르부아르는 기대이하였고, 이번 신작은 어떨지 궁금해서 또 봐야겠네요 ㅎㅎ
  • 취한배 2018/05/10 12:03 #

    정말 술술 읽히는 맛이 있더라고요! <오르부아르>를 포함한 '대작 시리즈' 사이에 소품처럼 훌러덩 쓴 작품이 <사흘>이라데요? 저는 <사흘>로 처음 만난 르메트르라 <오르부아르>를 보관함에 넣었는데요;;힝.ㅜㅜ(미리 실망) <사흘>은 재밌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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