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반사 Smoking

난반사 - 8점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소영 옮김/문학동네


맞네요, 이 책 좋아요. ‘이것은 한 아이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다.’(5)가 첫 문장. ‘언뜻 불운한 사고로만 보이는 아이의 죽음은 사실 살인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해서 죄 없는 아이를 죽인, 더할 수 없이 이상한 사건이었다’(6)고 내용을 미리 다 말해주고 찬찬히 진행되는군요. 박진감이나 뒤통수를 치는 한 방 같은 거 없이도 조용히 끌어가는 힘이 있어요. 누가, 왜, 보다는 어떻게 사회 전체가 살인에 동참하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작가도 언급하는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범인인’(5-6) 영국 미스터리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범인 들이 살해 의도와 칼을 들지 않았다는 정도일까요. 그저 약간의 이기심, 이번 한 번만 에라 나 편하고 보자, 하는 행동들이 한 아이의 죽음으로 귀결합니다. ‘꽃잎 하나가 지는 데도 온 우주가 동원된다’ 격으로, 멀거나 가깝게 모두 영향을 미쳐요. 인물들이 다 살짝 얄미운 정도의 내 모습, 내 가족과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어 뜨끔한 건 나만이 아니겠지요. 얼굴 없는 아니, 우리 모두의 얼굴을 하고 있는 범인(犯人), 범인(凡人) 말입니다.


최근에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누구 한 사람만 꼬집어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사건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범인을 욕하고, 때리고, 그리고 평생 원망할 수 있다면, 그것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 같았다. (426)


중반까지 얼핏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인물들 일상이 툭툭 소개되어요. 이들이 한 아이의 죽음에 어떤 ‘쓸모’를 가질지 예상해보는 묘미가 있습니다. 일시적인 편의, 각자 슬며시 눈감고 벌이는 사소한 일탈이 차곡차곡 쌓여요. 개중에는 선의와 명분을 가진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의도 또한 자기 욕심에서 비롯한 것임을 작가는 놓치지 않아요. 어쩜, 모두가 이럴까 싶던 와중,


“영감탱이! 거기 서. 치우고 가라니까.” (121)


시원한 목소리였습니다. ‘영감탱이’는 이럴 때 쓰는 겁니다. 네, 자기 개똥은 자기가 치워야 하지요. 일견 비행청소년 같아 보이는 소녀 학생의 외침이어서 짜릿했습니다. 이런 ‘비행’이라면 좋아요. 제가 좋아합니다. 작가는 아주 친절하게도 사건 이후 우리가(유가족이) 등장인물 들을 모두 다시 만나게 해 줍니다. 잘못을 시인하면 전부 제 책임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인물 들입니다. 그러나 가책은 조금씩 나눠 가짐을 어렴풋이 알 수 있어요. 무엇보다 개 주인, 자존심 센 저 영감탱이에게는 부인의 이 말이 큰 벌이 되었을 겁니다.


“당신, 말년을 더럽혔네요.” (449)


‘사건’과 ‘사고’ 차이를 또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가 죽은 건 사고의 형태를 띠지만 이야기를 읽은 우리는 그걸 사건이라고 부르게 될 거예요. 같이 분노하고 또 함께 반성하게 되지요. 조화(弔花)는 쌓이고 친절과 응원도 도착합니다. 모두가 조금씩은 깨우쳤을 겁니다. 저처럼 말이죠. 차분하게 균형 잡힌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덧글

  • 2018/04/24 04:19 # 삭제 답글

    아 저도 그렇게 지를 수 있는 성격이었으면 좋겠어요. 무턱대고 곤니찌와하는 사람에게 질렀다가 저녁 내내 기분이 더 나빠짐.. 개 똥 우리집 앞에 싸게 냅두고 그냥 가버리는 인간들에게도 영감탱이!! 보다 심한 욕을 해주고 싶네요. ㅋㅋㅋ

    요즘 일본 픽션은 여러 다른 사람의 이야기 다 묶어서 하나로 귀결되는 그런게 유행인가봐요 정말. 얼마 전에 ‘분노’라는 영화도 봤는데 꽤 좋았어요.

    아래 스트레인 저도 봤습니다. 거의 책 나오자마자 봤으니 진짜 오래 전에 봤는데 서늘하니 재밌더라구요. 하지만 완결은 못봤네요 나오는데 넘 오래 걸려서.
  • 취한배 2018/04/24 19:54 #

    ㅜㅜ지르고 기분 나빠지면, 안 지르니만 못... 지르는 성격은 과연 따로 있나 보네요. 대체 어떻게 지르셨기에?! 제 경우엔 그냥 봉주르!하고 말았던 기억이 나네용. 속으로 당신은 곤니찌와밖에 모르는군, 하면서요. 영감탱이 보다 심한 욕, '방금 똥 싼 동물의 자식!!'ㅋㅋㅋㅋ
    그게 소위 '사회파'라는 것 같아요. <분노>도 괜찮았다고요? 참고.
    뱀퐈야 시리즈 말이죵? 저도 보관함에만 넣고 아직 사지는 않았네요. 여름 되면 구해 볼 지도 모르겠어요. 가끔 당겨요, 징글징글슬래셔, 그죠.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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