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페스트+어떤 태풍+마녀의 씨 Smoking

템페스트 (반양장)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문학동네


며칠 전 난데없는 강풍 속에서 읽었다. 셰익스피어 폭풍은 푸로스퍼로의 마법이었어. 정령과 마법과 도깨비 들이 난무하는 판타지 모험 활극……이라기엔 너무 식은 셰익스피어다. 마법의 지팡이를 바다에 던지는 푸로스퍼로, ‘극예술을 버린’(164/185, 해설) 말년의 셰익스피어. 그렇지만 여기저기 끌어다 쓰인 경우가 많아 무시할 수 없는 원전이다. 대표적으로 ‘<멋진 신세계>라는 표제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의거한 것이지만 물론 역설적 용법으로 사용된 것이다.’(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작품 해설, 이덕형, 문예출판사)


미랜더:
오, 놀랍구나!
훌륭한 사람들이 여기에 이렇게도 많다니!
인간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분들이 존재하다니,
참, 찬란한 신세계로다!  (140/185, 5막 1장, 강조는 나)


‘O brave new world!’ 미랜더는 세 살 때 섬으로 유배되어, 이후 홀아비 아래 12년 간 자란 사람이다. 인간 무리를 처음 본 감상이 저러한데, 제대로 된 문명을 접해보지 않은 이의 눈에 무엇이든, 누구든 놀랍고 멋지지 않았을까. 해당 구절을 가져다 제목 삼아 새롭게 한 헉슬리가 더 멋지다. 홀아비 푸로스퍼로는 전직 밀라노 대공. 동생에 의해 폐위되어 섬으로 쫓겨났다. 12년 간 칼을 갈다가 한 방에 복수하는 얘기다.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는 취지.


음모와 복수 얘기는 이전 작품에서 충분히 했다고 여긴 말년의 셰익스피어인 모양이다. 극적이기보다는 맥 빠진다. 17세기 한계라는 단점은 앞으로 계속 다시 쓰일 원인이자 원천이겠다. 예컨대, 복수의 칼을 갈면서 푸로스퍼로 자신 섬에서 벌인 정복과 식민화 같은 것. 에메 세제르를 이어 읽어야 하는 이유다.



 어떤 태풍 - 8점
에메 세제르 지음, 이석호 옮김/그린비


칼리반(캘리밴) 관점에서 다시 쓰인 ‘태풍,’ <The Tempest>가 아니고 <A Tempest>다. 프로스페로(푸로스퍼로)가 섬에서 행한 문화제국주의를 아프게 꼬집는다.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불편했던 마음, 세제르에서 후련해진다. 번역도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마치 원래 우리말로 된 희곡을 보는 느낌이다. 식민지 삼는 과정에서 종종 행하는 언어 이식 비판은 특히 멋지다. 세제르가 작가로서 가장 씁쓸하게 여겼던 부분이기도 하리라.


프로스페로: 네놈이 그런 궤변을 좋아하게 된 것도 다 내 덕인 줄이나 알아라. 내가 네놈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준 덕이지. 야만적이고 말도 못하는 짐승 같은 네놈을 가르치고 보살펴 짐승의 세계에서 끄집어내어 준 게 누군데. 물론 네놈에게는 아직도 짐승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말이다.
칼리반: 거짓말 마시오. 당신은 내게 아무 것도 가르쳐준 것이 없소이다. 당신의 언어로 조잘거리는 법을 가르쳐 당신의 심부름이나 하도록 만들었을 뿐이지. 땔감을 해오고, 접시를 닦고, 먹거리로 물고기를 잡아오고, 채소를 심는 따위의 잡일들이나 하도록 만들었을 뿐이오. (…)
프로스페로: 내가 없었다면 네놈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이나 해보았느냐?
칼리반: 당신이 없었다면? 난 왕이 되었을 것이오. 난 원래 이 섬의 왕이 될 인물이었으니까. 그건 내 어머니 시코락스가 내게 남겨준 자리외다. (61-62, 1막 2장)


프로스페로가 도착하기 전 섬에는 칼리반이 살고 있었다. 시코락스가 낳은 아들이다. 셰익스피어가 ‘생선 냄새를 피우는 괴상한 물고기,’ ‘미개한 기형의 노예’로 등장시킨 칼리반을, 세제르는 원주민으로 설정하고 있다. 프로스페로에게서 얻은 언어라고는 하나 전유하여 되돌려주는 무기로써의 언어다. 변화와 해방을 쟁취하는 칼리반. 세제르에게 와서 <템페스트>는 프로스페로가 거두는 복수극이 아니라 칼리반이 얻는 독립과 자유가 된다. 결말 부분도 원전과 크게 다르다. 통쾌하고, 무엇보다 울컥한다. 이제 마거릿 애트우드로 가 볼 차례다.


칼리반: 당신은 모를 것이외다... 당신의 흔적을 내 몸 속에서 완전히 뽑아 내버리는 일이 왜 내게 희망이 되는지를... (151, 3막 5장)



마녀의 씨 - 8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현대문학


이야기 속에서 연극 <템페스트>가 공연되고 이야기 자체도 <템페스트>를 따른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를 무대에 올리는 연극 연출가의 복수극이다. 원전에서 시코락스가 마녀로 설정되어 있고, 욕설 중에도 등장하는 문구이기에, 제목으로 봤을 때는 칼리반의 또 다른 재해석이 아닐까 했다만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모든 캐릭터의 재해석이자 <템페스트> 깊이 읽기라고 할까.


극단에서 해고된 연출가가 교도소에서 연극 수업을 이끈다. 현대적인 연출을 간접적으로 보는 재미가 있다. 관객을 연극에 끌어들이는 형식에다, 원전의 ‘마법’은 약물의 힘을 빌리는 등 꼼꼼하고 치밀하다. 끌어들인 관객은 마침맞은 대사를 읊어주니 이건 뭐 완벽한 복수극. 공연을 끝내고 각자 연기했던 캐릭터 들이 이후 겪을 일을 상상해보라는 마지막 과제까지, 충실한 수업이다. 수감자들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원전이 있다. 열린 채로. 얼마든지 다시 쓰고 읽으라고. 아마도.


“셰익스피어에게 고전을 만들겠다는 의도 같은 건 전혀 없었습니다!” 필릭스의 목소리에 분노가 묻어났다. “그에게 고전이란, 그러니까 베르길리우스, 헤로도토스, 그리고……. 그는 그저 가라앉지 않으려 애쓰는 배우이자 극장 지배인에 불과했어요.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갖게 된 건 순전히 운이란 말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죽을 때까지 출간된 것조차 하나도 없었어요! 그의 옛 친구들이 조각조각 흩어진 희곡들을 이어 붙였던 것이죠. 그가 죽고 난 뒤 지친 배우들이 자기들이 말했던 것을 애써 기억해 냈다고요!”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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