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죽음 Smoking

풀의 죽음 
존 크리스토퍼 지음, 박중서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어떤 면에서 보자면, 어쩐지 나는 그 바이러스가 승리하는 게 차라리 ‘정당하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벌써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땅을 마치 돼지저금통인양, 얼마든지 꺼내 써도 되는 물건인양 대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따지고 보면 땅도 그 자체로 생명을 지니고 있거든.” (81)


The Death of Grass. 서지분류 원예 아니고 소설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 걸작으로 손꼽힌다는 작품으로 영국 작가 존 크리스토퍼(본명 샘 유드)가 1956년에 펴냈다. 그 손은 누가 꼽는지 모르겠으나 불편함으로 친다면 손꼽히는 게 맞을 거다. 불편함. 바이러스로 인한 볏과 식물의 죽음에서 연쇄하는 생존 위협 상황. 인간 존엄성 자체에 대한 물음이야 각오하고 봤다만 성차별 편견이 노골적이라 이중으로 불편하다. 옛날 할배 작가들의 대표적인 한계이겠다.


로버트 맥팔레인이 작품 해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 『파리대왕』(1954)과 견줄 법도 한 극한 상황이다. 생존하기 위한 살인, 이기심, 대장놀이. 문명이 뒷받침해주지 않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야만성 말이다. 어찌 보면, 추하고 잔인한 모습을 별안간 되돌아보게 해줄 구조선이라도 등장했던 『파리대왕』보다 더 불편하다. 인간성, 연민, 자비에 있어 문명이라는 게 얼마나 든든한 쿠션인지, 또한 얼마나 쉽게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솜털인지 풀의 죽음으로, 벌의 죽음으로, 방사능 확산으로, 사이버 테러로, 문학은 경고하는 셈이다. 


미세먼지로 숨이 턱턱 막히는 나날에 읽으니, 풀이 다 죽어 거무죽죽한 소설 속 들판 묘사가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아 더 슬픈 건 물론,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인간 풍경이겠지만. 잔인하고 가차 없는 주인공 일행의 여정은 무척 피곤한데, 30여 년 후 『핏빛 자오선』(1985)과 50여 년 후 『로드』(2007) 기조가 1956년 존 크리스토퍼에 있었음을 발견한 건 큰 기쁨이다. 특히 이런 장면.


“댁들은 어디서 오는 거요?”
존이 대답했다. “런던에서 왔습니다.”
(…)
“어디로들 가는 거요?” 상대편 남자가 물었다.
“황야를 지나서 웨스트모어랜드로 갑니다.” 존이 대답했다. (219)


데 돈데 비에네? (어디서 오는 길이오?) 낯선 자들이 외쳤다.
아 돈데 바? (어디 가는 길이오?) 판사가 외쳤다. (코맥 매카시, 『핏빛 자오선』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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