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머시, 혹은 도널드 크로허스트의 기이한 마지막 항해 NoSmoking

도널드 크로허스트의 기이한 마지막 항해 - 10점
니컬러스 토멀린 & 론 홀 지음, 박여영 옮김/클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영웅 이야기이지만 영웅은 없다. 그리고 악당도 없다. 크로허스트가 기만행위를 벌인 것은 사실이나, 그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용기와 지성을 가지고 행동한 사람이었다. (9/499, 책머리에)


달에 인간을 보내려고 쿵짝쿵짝하던 무렵 지구에서는 대양을 요트로 한 바퀴 도는 세계일주 경주 또한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뭔가 원시적인 듯 귀족적인 듯. 또한 스포츠인 듯 여가인 듯. 그러나 경쟁은 굉장히 치열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경마 시합을 보는 것처럼 시민들이 즐겼던 모양이다. 상금도 크다. 몇 달이 걸리는 일주였으니 물론 경마보다야 훨씬 느린 경합이었겠다. 전보와 전신 등속으로 듬성듬성 전해지는 소식, 그걸 싣는 신문으로 느릿느릿 관전(?)하는 경기를 지금 보니 꽤 낭만적인 느낌도 없지 않다.


몇 달을 망망대해에서 혼자. 그 짓을 왜 할까 싶지만 도널드 크로허스트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무너져가고 있던 회사와 명성과 돈을 한 방에 회복할 찬스. 더구나 허세 부리기 좋아하고 과대망상기가 농후한 이이에게는 마침맞은 도전이 아닐 수 없었겠다. ‘술집의 허풍쟁이’와 ‘외롭고 헌신적인 연구원’(347) 사이를 조울증처럼 왔다 갔다 하던 성격은 처음부터 위태로워 보였다. 정말이지 정이 가지 않는 성격임에 틀림없는데, 아아 ‘진실의 위대한 아름다움’(477) 앞에서는 감동하며 두 손 들었다.


기자와 편집장이 쓴 탐사 보도이나, 내용 유출을 조금도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줄거리를 줄줄 읊은 리뷰를 봤다면 나도 분노했을 거다. 탐정소설마냥. 아니나 다를까,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크로허스트 자신의 증언에 바탕을 둔 단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는 탐정소설이 되고, 그의 모든 기록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추론하는 증거가 된다’(206/499)고 저자들도 적었다. 항해일지와 메모들을 꼼꼼히 살펴 재배치하고 상상하고 추론하여 마침내 우리에게 그려 보여주는 한 인간상이다. 나 역시 늘 끌리는, 실패한 영웅. 마지막 결단 앞에서 그이가 내린 선택이 저자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 상반된 증언,’ ‘허위,’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등 목차를 보았을 때는 리플리 급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어이쿠, 모비딕 급 여운이다. (아마도. <모비딕> 아직 못 읽었다;) 바다, 배, 삭구, 바람 등과의 싸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투쟁이 눈물겹다. 멀쩡했던 사람도 돌아버릴 고독의 맛이 생생하다. 망망대해 광기라 할지라도 어쩌면 진짜 자기를 구한 곳. 원제 <도널드 크로허스트의 기이한 마지막 항해The Strange Last Voyage of Donald Crowhurst>(1970)가 영화 <더 머시The Mercy>(2018)가 된 이유는 크로허스트가 남긴 메모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게임을 다음번에 치를 때는
나의 위대한 신이 고안한 규칙에 따라
게임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에게까지도
게임의 이유에 관한 진실뿐 아니라
다음 게임의 결말에 관한 진실도 드러내셨다
(…)
그것은 자비Mercy다 (478-479/499)




감정이입을 너무 쉽게 이끌어낼 콜린 퍼스의 잘생김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이 탁월한 기록, 원전으로 만나길 추천한다. 멋진 탐사물을 남겨준 저자들 소개가 이렇다(출처 알라딘). 끝.


 ㆍ니컬러스 토멀린 :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데일리 익스프레스』 『선데이 타임스』 등의 특집 칼럼니스트를 지냈고, 『뉴스테이츠먼』의 문학 전문 기자로 일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취재로 ‘올해의 기자’에 후보에 뽑히기도 했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취재 도중 이스라엘에서 사망했다.

ㆍ론 홀 : 케임브리지대학교 펨브룩 칼리지에서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했다. 『선데이 타임스』의 조사팀인 ‘인사이트’의 공동창립자로서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편집자로 일했으며, 1969년에 『선데이 타임스』의 편집장을 지냈다. 2014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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