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아틀리에 NoSmoking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 8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열화당

 

화폭을 잘 들여다보면 ‘부조’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형상이 얻어낸 것은 차라리 깨부술 수 없는 단단함이다. 그것은 무한히 큰 질량을 갖고 있을 것만 같았다. (…) 멀리에서 바라본 하나하나의 초상화는 그리하여 조약돌처럼 단단하고 달걀처럼 꽉 찬, 삶이 응집된 덩어리로 나타나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도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얼굴들을 그 안에 품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33-34)


1950년대 자코메티 모델을 했던 장 주네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남겼고 1960년대 자코메티 모델을 했던 제임스 로드는 <작업실의 자코메티>를 남겼다. 조각가/화가의 모델이 되려면 모델 자신 작가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는 과장이고. 그리는 사람과 그려지는 사람 사이 공감과 친분이 벌이는 화학작용, 글로 옮긴 작품이(도) 아름다운 건 틀림없다. 메마른 평론이나 주례사가 아닌, 온기 적절한 작업실 풍경과 대화, 사람됨과 관찰, 감상까지. 그림이나 조각 작품 자체도 숭고하지만 그걸 글로 풀어쓴 능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리고 지우고 긁어내고 덧칠하고, 자코메티의 수많은 선들이 이루는 ‘부조,’ 데생을 나는 조각보다 더 좋아한다. 주네는 자코메티의 그림 작업을 다이아몬드 세공에 비유하던데 마침맞다 싶다. 여백에 빛을 ‘조각’하는 작업. ‘깨부술 수 없는 단단함’이나 ‘무한히 큰 질량’ 같은 수식어와도 들어맞는다. 얼핏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사람의 화학작용, 베케트와 자코메티 사이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카소 또한 부러워하기도 했다는 관계에서 나온 보석,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다.


고독과 죽음에 더해 자코메티 작품에서 떠올릴 단어로는 기억이 있겠는데 기억과 관련하여 자코메티 조각 작품 <새벽 4시의 궁전>을 아름답게 삽입하였던 소설로는 <안녕, 내일 또 만나>가 있었다. 주네의 글 또한 예술론을 넘어선 기억, 우정의 밀도 높은 기록일 것이고. ‘사물의 고독’에 해당하는 아래 수건 일화는 다른 책에서 분명히 본 것인데 ‘자코메티’ 태그로 방구석을 다 뒤져도 출처가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프랑스어 본으로 기억하는데, 원전은 사라졌고 수건만 고독 속에 남아 있다.


그(자코메티)-언젠가 방 한구석에 놓인 의자 위에 걸쳐진 수건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순간, 개개의 사물이 홀로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사물이 다른 사물을 짓누를 수 없도록 하는 무게 -아니 차라리 무게의 부재- 를 갖고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소. 홀로 있는 그 수건은 너무도 혼자인 듯해서 의자를 슬며시 치워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어요. 수건은 자기 고유의 자리, 무게 그리고 자기만의 침묵까지도 가지고 있었던 거요. 세상은 가볍고도 가벼워 보였어요…. (31)





덧글

  • 2018/03/06 22:25 # 삭제 답글

    현대예술은 어째 문학 없이는 감흥이 떨어진달까, 확실히 실물보다 이 글이 좋네요. 무한히 큰 질량이라는 말 공감. 이 말은 즉 제가 뉴욕에서 자코메티의 작품을 봤다는 거죠. 하하하하 (자랑)
  • 취한배 2018/03/07 11:50 #

    ㅎㅎ자랑쟁이포 님. 저는 자코메티를 실물로 봤는지 아닌지도 기억이 안 나요.ㅠ 사진, 다큐, 브로셔 등 하도 여기저기서 많이 봐가지고. 퐁피두에서 본 것도 같긴 헌데;;ㅋㅋ 이 책 장 주네가 정말 잘 썼더라고요. 어렵지 않게+밀도 높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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