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나무 숲 Smoking

비자나무 숲 - 10점
권여선 지음/문학과지성사


사람 관계란 어쩌면 오해가 지탱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삐걱대고 틀어지고 헤어지는 순간에 어떤 깨달음, 그러니까 이해가 오는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과연 의도적인 악의를 갖고 관계를 맺겠습니까. 다만 모두가 조금씩은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탓이겠지요. 끝난 관계를 되돌아보는 등장인물들, 그 관계들 이후 분명 조금씩은 무언가를 배우고 성숙해지기도 했을 겁니다. 나는 이들이 모두 너무 좋아 떠나보내기가 힘듭니다만, 지금은 이미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버렸네요. 총총 멀어지는 뒷모습들이 불안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모두의 안녕을 빕니다.


내 안에 와서 잠시 살다간 이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상대를 알게 됨은 자기 자신을 더 알게 됨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희망, 온기, 감동’(226)이라고 쓰셨지요, 당신 이야기를 읽고 난 내 느낌이기도 합니다. ‘아랫것’이라 절실하기 때문은 아니고요, 당신의 성숙함과 외로움이 내게 꾸밈없이 전해주는 게 그러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는 이유는, 앞모습으로 다가올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 쓰시지 않아도 이해할 겁니다. 당신의 조바심까지도 좋아합니다. 발췌문은 긴데, 어디 한 군데라도 차마 중략할 부분을 찾지 못해서입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두 정류장 남짓한 거리를 걸었다. 적당한 보폭으로, 내가 지나치게 고독하고 우울하고 허기지지 않도록 조금씩 나를 달래는 방식으로 소삭소삭 걷다 보면, 밤의 산책은 독서로 혼미해진 내 영혼에 가느다란 실금을 내고 그 사이로 신선한 바람을 살그머니 들여보내주었다. 그 당시 내가 매일 밤 40분 넘게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뭔가 밤의 세례를 받고 씻기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혼돈된 사색 속에서 우주라든가 신, 불멸 같은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테마들을 사유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런 사유를 통해 내가 내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느낌을 얻었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사색과는 별개로, 다른 한편 나는 심각한 허기에 시달리면서 세상의 온갖 기름진 음식과 짜릿한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을 그리워하며, 솔개 앞에 놓인 작은 병아리처럼 말초적인 감각의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너무도 까마득하게 머나먼 추상적 사유와 지나치게 가까운 구체적 감각 사이를 빛의 속도로 오가면서도 나는 어떤 균열이나 모순도 느끼지 못했다. 당시 내 사유체계는 우주와 김치찌개, 신과 소주, 불멸과 한 개비의 담배가 병존하는, 투박하고도 초현실적인 유아론의 세계였다. (245-246,「진짜 진짜 좋아해」)


293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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