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플란넬 속옷 Smoking

내 플란넬 속옷 - 10점
레오노라 캐링턴 외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혁명하는 여자들』 별책인 셈으로, 거기에 실리지 않았던 다섯 편이 묶였다. 크기는 작은데 각각 개성 넘치고 강한 임팩트,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별책이지만 혼자서도 존재이유 충분해 보인다. 감방과 유배지, 푸른 수염의 성 같은 집, 이름과 언어 또는 민족에 갇힌 여자들 이야기다.


1. 상어 섬의 어머니들. 감옥에 갇힌 무기징역수들의 죄목은 모성이고 종신형이다. 감옥 이름이 ‘만약의 성.’ 예전에 잡지 <IF>가 있었지. 2. 마거릿 A.의 금지된 말. 마거릿 A.는 체제에 위협이 될 말을 했다는 혐의로 세상과 완전히 격리, 수용되어 있다. 말의 내용은 중요치 않게 되고 격리만 남는다. 3. 내 플란넬 속옷. 한때 아름다움을 소비 당했던 ‘나’는 유배지에 보내어져 성인(聖人)이 되어 앉아 있다. 속옷은 계속 전시된다. 4. 유리병 마술. 비밀의 방은 어김없이 열린다. 변주된 푸른 수염 남편은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 덩어리다. 5. ‘나 레’의 일곱 가지 상실. 스탈린 체제의 딸이 기억과 역사를 얘기한다.


할아버지는 한밤중에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 사라지고 있다. 영원히 사라지고 있다. 그들은 딱 네 단어만 말할 뿐이다. 늘 한결같다. ‘스 베샤미 나 뷔코드.’ 대략 뜻은 이렇다. “당신 소지품을 챙겨서 나오시오.” 작은 가방 하나. 그들은 언제나 밤에 찾아온다. (131,「‘나 레’의 일곱 가지 상실」)


특히 아름답기로는 마지막 작품 로즈 렘버그의 「‘나 레’의 일곱 가지 상실」이 그렇다. ‘스 베샤미 나 뷔코드.’ 줄리언 반스가 그린 쇼스타코비치 발치에 놓였던 작은 가방이나 도블라또프의 36년 인생을 함축한 여덟 가지 물건이 들었던 여행가방이 선하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R이라는 글자는 스탈린을 떠올리게 하지도 않는다’(129)는 이유로 ‘R로 시작하는’이라는 뜻의 이름 ‘나 레’를 가지게 된 화자가 들려주는 기억과 역사. 나 레의 짧은 가족사이기도 하겠는데 시 같은 문장이 아프고 시리다. 수정crystal? 수정. 역사학자 할아버지가 강제수용소에서 머릿속으로 지었다는 러시아어 동의어 사전에 등장하는 단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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