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Smoking

그레이스 - 8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민음사


메리가 말하길 일을 언제 했는지 모르게 해 놓는 게 관건이라고 했어요. (…) 그리고 또 말하길 우리는 그들의 지저분한 속옷을 빨아 보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많은 걸 알지만, 그들은 우리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 결국에는 우리가 이기는 거라고 했어요. 하인들에게 숨길 수 있는 비밀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니까요. (236)


그레이스는 하녀다. 19세기 실존인물로, 1843년 동료 하인과 공모하여 집주인과 (가)정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복역한 사람. ‘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라는 띠지를 두르고 있는데 무려 1996년 작품이다. 같은 소재로 애트우드가 1974년에 쓴 티비 드라마 대본은 「하녀」. 1933년 프랑스에서는 가정부 파팽 자매가 집주인과 딸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다룬 장 주네의 희곡 제목이 「하녀들」(1947년)이었음을 감안하면 애트우드의 1974년 제목은 아주 적절했지 싶다. 집주인과 정부(또는 딸)을 살해한 하녀(들)이라는 맥락.


『그레이스』는 「하녀」와는 많이 달라진 모양으로, 무엇보다 이후 방대한 자료 조사가 이루어졌음을 작가의 말에서 읽을 수 있다. 각 부 제목이 퀼트 패턴 이름이란다. 조각조각 모은 ‘기정사실’들과, ‘누가 봐도 분명한 빈틈이 발견될 때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677, 작가의 말)는 구성으로 마침맞아 보인다. 삼인칭 서술, 초기 정신분석 과정에 충실한 일인칭 화법, 편지글 등이 번갈아 오면서 다채롭다. 빈틈을 상상하고 조각들을 배치하여 큰 그림으로 펼쳐준 이가 애트우드여서 든든하고 좋다.


대답을 보고 질문을 생각한다. 좋은 소설이 종종 시키는 일이다. 그레이스가 살해 범죄에 얼마만큼이나 공조했을까 혹은 주도했을까 보다는 기억 또는 진술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하는 게 질문으로 왔다. ‘원래 퀼트를 볼 때 색깔이 짙은 조각들 위주로 보는 방법과 옅은 조각들 위주로 보는 방법, 이렇게 두 가지가 있거든요.’(242) 짙은 조각 위주로 보든 옅은 조각 위주로 보든, 거짓과 진실과 상상이 이룬 멋진 퀼트다. 애트우드는 판사나 형사가 아니고 이야기꾼이라는 사실. 그래서 끝내 달성한 ‘목적’이라면, 문학이리라.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고요?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셰에라자드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사실 그녀가 한 이야기 자체가 진실과 거짓이라는 엄격한 잣대로 나눌 수 없는 것이지요.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니까요. 아마 그레이스 마크스도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말만 하고 있을 겁니다.”
“목적이라면……?”
“술탄을 재미있게 하는 것이죠.” 매켄지가 말한다. (553)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7/12/31 02:15 # 답글

    '(가)정부'라니, 센스쟁이 배님ㅋㅋㅋ 마거릿 애트우드는 도서관에서 마주칠 때마다 고민하게 만드는 작가에요. 왜 선뜻 집어들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읽을 수 있을까요? ㅋㅋㅋ 암튼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행복하세요^^
  • 취한배 2017/12/31 12:04 #

    센스를 알아봐주신 사다리 님이 센스쟁이.ㅎㅎ 애트우드는 사다리 님도 곧 만나실 것 같은데요?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프로젝트에서 <템페스트> 편이 애트우드, <마녀의 씨>로 나온 거... 보셨으려나용?ㅎ 내년에 함께 영접해보아요. 사다리 님도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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