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Smoking

피터 팬 
제임스 매튜 배리 지음, 이은경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41,『피터와 웬디』)


이때(1900년대 초)만 해도 ‘단 한 명’이었겠다만 지금은 귄터 그라스의 오스카도 있고 할란 엘리슨의 제프티도 있고 레이 브래드버리의 윌리도 있다. 자라지 않는 아이 테마는 어른다움을 되돌아보게 하는 장치일 터다. 세속성과 순응이랄까. 환상과 순수성의 결핍. 더 나아가보자면, 억압되는 이기성과 폭력과 두려움과 무지. 이런 면들을 피터야말로 다 갖고 있다. 그러니까,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두려움 없이 무지한 존재가 피터인 셈. 요정이 나온다는 말 그대로 fairy tail이면서 ‘동화’라고 통용되는 뜻으로써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만은 아닌 게 배리 원작이다. 내가 알던 피터 팬은 디즈니가 만든 환상에 가까웠지 싶다. 숱한 동화들이 그래왔듯.


39쪽


“팬, 넌 도대체 누구며 무엇이냐?” 후크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난 젊음이자 기쁨이지.” 피터는 생각나는 대로 대충 대답했다. “난 알에서 깨어난 작은 새야.” (228,『피터와 웬디』)


희곡을 소설로 바꾼 『피터와 웬디』(1911년),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1906년)이 같이 묶였다. 소설로 보는 피터 팬은 『파리대왕』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 폭력을 자랑한다. 아이들을 이상할 정도로 좋아했던 배리답게 아이들을 잘 알았던 게 아닌가 싶다. 아이를 좋아했던 또 한 명의 작가, 한 세대 전 루이스 캐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캐럴이 먼 거리에서 아이를 동경하고 사랑했다면 배리는 아이와 생활하며 사랑한 느낌이랄까. 아이라는 존재를 ‘쾌활하고 순수하고 매정한 사람’(254)이라고 한 걸 보면, 부모 대신 조카를 봐주는 사이 아주 친해졌다고 생각했다가도 부모가 도착하는 즉시 배반당하는 이모삼촌의 씁쓸함을 아는 것만 같다. 암, 내가 잘 안다.


‘순수하다’는 종종 좋은 뜻으로 쓰이지만, 멍청하여 쉽게 휩쓸리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다는 뜻도 포함하지 싶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으리라.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멍청하고 이기적이었지. 그걸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기본적인 뜻에서의 성장이 아닐까 한다. 환상성이 가미된 가운데 시대적인 예스러움도 없지 않다. 여자아이는 조심성이 많아서 유모차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 점은 수긍이 가나, 같은 또래 여자아이를 ‘엄마’라고 상정하는 설정은 매우…… 징그럽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성애로 가득 찬 캐릭터라니, 이것도 환상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피터 팬의 실제 모델이었던 데이비스는 ‘1960년 4월 5일 저녁, 로열코트 호텔의 바에서 술을 마신 후 인근의 슬로언 광장 지하철역에서 투신자살’한다. (곽한영,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117) 향년 63세. 당시 주요 뉴스 헤드라인은 ‘피터 팬의 죽음’이었단다. 데이비스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날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던 건 확실한가 보다. 유명동화가 족쇄가 되진 않았을지. 늦었지만 명복을 빈다. 끝으로 네버랜드 약도를 첨부한다. 가보고 싶은 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두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간 다음 아침까지 쭉 가면 돼.” (87,『피터와 웬디』)


 

덧글

  • 2017/12/19 01:48 # 삭제 답글

    윽 요즘 어디 말할 수도 없는 일을 갖고 낑낑거리고 있는데 이 리뷰 뭔가 절묘하네요..
  • 취한배 2017/12/19 15:06 #

    잉.낑낑. 성장하시는 중인가욤?ㅠㅠ 두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간 다음 아침까지 쭉 가...시지 말고 집에 잘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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