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Smoking

아쿠아리움 - 10점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arte(아르테)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이미 굳어가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엄마가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를 쳐다보던 그 역겨운 표정을 나는 보았고, 그때 뭔가 동물적으로, 즉각적으로 생겨난 반응이었다. 엄마가 나를 때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뭔가가 달라졌다. 어떤 스위치가 영원히 꺼진 것이다. 신뢰나 안전, 혹은 사랑 같은 것은 끝이 났다. 그 스위치를 우린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 (341)


번역 출간된 데이비드 밴 세 권 중 읽지 않고 아껴두었던 마지막 작품. Axt 가을호 표지인물이 반가운 데이비드 밴이어서 마지막 곶감 빼먹었다. 역시 세다. 사랑과 폭력의 희한한 하모니가 어디 가지 않았구나. 이번엔 어린 딸과 엄마와 할아버지다. 엄마의 분노도 이해가 가고 할아버지의 뉘우침도 절절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일종의 스포.) 화해, 용서까지 담겼다.


아이, 아니 나아가 사람의 성장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거나 미워)하다가 어느 순간 그들의 미성숙함을 깨달을 때 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들도 (나처럼) 불완전하고 감정에 휩쓸리며 늘 옳은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시기 말이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가도 끝내는 연민하게 된다. 약간은 더 따뜻해진 데이비드 밴 같기도 한데, 이 말 믿고 보는 사람 없겠지만, ‘센’ 건 밴의 디폴트 옵션이라는 점. 그래서 가끔 만나야 하는 밴…… 이제 곶감 없어서 아쉬운 마음은 일단 Axt로 달래야겠다.


널 가진 후에 모든 게 다 변했어. 몸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평소엔 안 나던 냄새가 났고, 피부는 건조해졌어. 머리카락도 그렇고. 전에 잘 먹던 음식들을 먹을 수가 없었지. 처음으로 알레르기가 생기기도 했어. 너는 내 안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어. 그건 일종의 침략이었어. 암이 시작됐을 때랑 똑같아. 내가 죽어가고 있는 건 다 너 때문이야. (204)


일종의 침략, 암처럼. 지난 가을에 만난 보란스카야 뱃속에는 2센티미터짜리 태아가 들어 있었다. 입덧과 예민함과 무기력함으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보았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암처럼 점령해 기생하고 군림하다가 세상에 나온 당신, 숙주가 당신을 증오하지 않고 어쩌다가 사랑한다면 얼마나 한 행운인지. 당신이 나오기 전부터 그들이,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게 겸손함이자 예의이자 삶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휴, 데이비드 밴은 정말 쩌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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