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Smoking

안녕 주정뱅이 - 10점
권여선 지음/창비

 

모기약 찾는 손님이 많은가봐. 내가 모기약 같은 거 없냐고 그러니까 잽싸게 모기약 같은 거 절대 없대. 그래서 내가 여기 방 안에 모기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얘가, 하며 규가 또 웃었다.
왜?
모기 같은 건 고객님 부담이래.
훈도 웃었다.
모기 같은 건 우리 부담이래?
응, 우리 부담이래.
어쩌냐, 부담스러워서.
그러니까. 주란은 결코 모기 같은 건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텐데.
그럼 우리 둘이 부담해야 하는데 큰일이네.
살다살다 모기 같은 걸 부담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부담부담 하다 보니 모기 같은 것도 제법 정겹게 느껴지지 않냐. (56,「삼인행」)


처음 만납니다. 그동안 주정뱅이 몰라 뵈어 미안합니다. 마음속 빈방이나 고통, 슬픔 같은 건 충분히 기대했지만 유머까지 갖추시면 어떡합니까. 울다가 웃다가 했습니다. 외롭지 않아졌습니다.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하지 않을 상대란 얼마나 한 안심과 위로인지 당신은 아시겠지요. 고맙습니다. 당신이 A에게 느꼈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친밀감’(271), 저는 당신의 A님과 당신께 느낍니다. 그뿐일까요.


영경이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을 비우고 과자 한 봉지와 페트 소주와 생수를 사가지고 편의점을 나왔을 때’(33), ‘훈이 주란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규와 자기 잔도’ 채워 셋이 ‘잔을 부딪치고 그대로 비워’(72) 낼 때, 이모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밤에 소주 한 병 정도를’(84) 마실 때, 관희와 문정이 ‘멍하니 마주 앉아 생각나면 잔을 들어 맥주를 마시고 말없이 화장실에 다녀오고 맥주가 떨어지면 맥주를’(132) 시킬 때, 젊은 소설가가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천천히’(141) 마실 때, ‘클럽에서 나오자마자 혜련은 술이 다 깼다며 경안에게 집에 가서 남은 술을 더 마시자고 소리를’ 질러 경안은 좋다고 하나 선미가 ‘거기 가기 전에 밖에서 좀 더 놀다 가기를 원하고’ 그래서 그들이 ‘선미가 잘 아는 언니가 하는 방배동 까페에 가서 한 잔 더 하기로’(201) 할 때, 예연 씨가 ‘블라인드를 반만 올린 거실에서 라면과 소주를’(240) 먹을 때는 어땠을까요.


속이 찌릿하고 침이 돌았습니다. 내 친구와 선배와 후배와 애인과, 심지어 몰랐던 사람들까지도 내 술상에 왔다가 간 느낌입니다. 이야기와 이야기와 이야기들이 알코올마냥 속을 쓱 긁고 지나간 듯합니다. 긁힌 자리는 아프지 않습니다. 위로 같았습니다. 오늘 밤 술상에는 당신이 없겠지만, 당신의 위로와 해장은 함께 할 겁니다. 또 뵙죠. 저 또한 먼저 해보지 않은, 일어나자는 말, 당신께는 합니다. 안심과 위로를 주는 사람은 당신이어야 하니까요.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272) 없는 분, 당신이니까요. 제목 때문에 펼쳐 보았다가 홀딱 반하고 덮습니다. 안녕 주정뱅이.


잠자코 앉아 있는 규 대신 훈이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소주가 오자 주란이 턱을 받친 손을 내려 소주잔을 집었다. 나도 줘. 훈이 주란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규와 자기 잔도 채웠다. 셋은 잔을 부딪치고 그대로 비워냈다. 다시 한 순배가 돌았다. 이번에는 규가 잔을 채웠다.
눈은 내리고, 술은 들어가고, 이러고 앉아 있으니까 말야, 규가 초초하게 술잔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우리 다시는 서울로 못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지 않냐? (72,「삼인행」)


 

덧글

  • 2017/11/15 05:43 # 삭제 답글

    헉 마지막 문장 매우 그리운 밤이 생각나고 말았어요!
    눈오는 날도 없고 소주도 없고 뭐 여긴 이래..
    ㅠㅠ
  • 취한배 2017/11/15 23:17 #

    오늘 서울 갑자기 너무 추워서 깜놀. 추위를 많이 타는 저이지만, 눈은, 크, 눈은 와야 하는 겁니다.ㅎㅎ 포 님 거기는 눈 오는 날도 없고 소주도 없지만 많은 다른 것들이 있잖아요~ (애인이라든지 고양이라든지.) 희희희+건배.
  • 다락방 2017/11/15 09:51 # 삭제 답글

    아아 측근님의 공간에서 권여선이라니요! 크- 취합니다.

    저는 이 책 읽다가 '아, 이제 술 좀 줄여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말았지 뭡니까. 물론, 그 후로 줄이진 않았습니다만. 후훗.
  • 취한배 2017/11/15 23:18 #

    한국문학알못이라, 이제야 뒷북치며 합류합니다. 저 권여선 작가 너무 좋아서 오늘 비자나무 숲도 사왔어요.ㅎㅎ
    ?? 저는 이 책 읽다가 아, 술 좀 더 마셔도 되겠군, 생각했는데요!!ㅋㅋㅋㅋ+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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