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종말 리포트 Smoking

인간 종말 리포트 - 8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민음사
 

인류 종말을 보았던 『타임머신』후유증인가. 자연스럽게 이어 읽은 애트우드 소설 『인간 종말 리포트』다. 웰스-엘로이가 애트우드-크레이커 같기도 해서 흥미롭다. 그러니까 웰스의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802,701년에 만나게 되는 엘로이(지상인)들이 크레이커(유전자 조작된 지적 생명체)들 미래 모습일 것 같다는 얘기. 즉, 『타임머신』의 프리퀄이라 해도 좋을 성싶다. 하기야 인류 종말을 소재로 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빼어난 고전으로 웰스가 선점해버린 원미래, 서기 팔십만 이천칠백일 년에서 어떤 작가나 독자도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답답하기만 했던 『시녀 이야기』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작가의 역량이다. 무섭다. 과학과 자본이 만나 벌이는 협잡, 그로 인한 양 계층 차이 심화, 욕심이 부른 후유증, 결국 인간 종말. 그러고 보니 웰스의 영향이 『타임머신』만은 아니어서, 『모로 박사의 섬』도 보인다. 유전자 조작으로 얻어내는 숱한 생명체들 말이다. 돼지구리, 너구컹크, 늑개…… 한글 프로그램에서 빨간 줄이 쳐지는 애트우드 표 조어. 능히 상상할 이름 섞음은 그렇다 치고, ‘닭고기옹이’ 같은 건 원어를 병기해줬어도 좋았을 텐데. (옹이가 뭐냐.)


애트우드의 무서움은 현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설정에서 온다. 『시녀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답답함처럼. 현실 고발은 그런 것이겠다, 답답함 또는 무서움. 한 치의 해방감이 없어 숨 막힐 것 같았던 애트우드가 ‘나 이렇게도 쓸 수 있거든?’ 말하는 듯하다. 좋다. 이야기꾼의 진면모, 1권은 누운 자리에서 그대로 다 읽었다. 웰스의 인류 문명 비판과 경고를 고스란히 다시 읽는 것 같아서 띠지 광고문구 『멋진 신세계』『1984년』 자리에 『타임머신』『모로 박사의 섬』을 넣고 싶은,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지미는 그리 새겨듣지 않았다. 닭고기옹이와 늑개에 대한 우려가 앞섰던 것이다. 이들이 어떤 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어떤 경계를 침범한 것이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얼마만큼이 지나친 것이며 어느 정도가 심한 것일까? (2권 57)




덧글

  • 2017/11/14 00:19 # 삭제 답글

    이 작가의 책은 단편집 하나 읽었는데 너무 현실 같은 이야기를 중반 부분 그냥 띡 떼어와서 적어놓은 것 같아서 독서의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ㅎㅎ 얼마 전 애인이 시녀이야기 읽더라구요. 괜찮다하긴 하던데 전 어쩔까 읽을까 말까 아직도 고민입니다 지난번에 장바구니 들어갔다 빠진책이고. 암튼 이 책도 궁금하네요. 하지만 종말이라니.. 너무나도 무거운 이 느낌
  • 취한배 2017/11/14 16:40 #

    전 시녀이야기보다 이 책이 더 재미있었어요. 시녀이야기는 포 님 앞선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은(답답답답;) 반면 이건 책장이 슉슉 넘어갔어요. 물론 무겁긴 하지만 제 생각엔 포 님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끙. 장담은 못합니돠.ㅋㅋㅋㅋ 타임머신은 읽으셨어요? 타임머신 좋아하신다면 이 책도 강추할 수 있을 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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