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1, 2, 3 Smoking

그것 세트 - 전3권 - 4점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정체가 뭐였습니까?” 해럴드 가드너는 조용하게 물었다.
“데리, 바로 이 도시였어요.” (1권 64)


데리 지하에 ‘그것’이 산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 오랜 옛날부터 영속해온 악이자 공포. 그것을 보는 아이들이 있고 처치하려 한다. 완전히 못 끝내서 27년 후 재회하여 다시 처치하려 한다. 끝. 세 권이나 쓸 필요가 있었을까. 무서웠느냐고? 지겨워서 혼났다. 영화개봉에 발맞춰 새 옷을 입고 나온 책임에도, 그냥 솔직하게 말하련다. 유치하고 구리다. (세상에, 감히 킹 옹에게!) 악과 공포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였더라는 식의 환상소설에 머물렀다면 훌륭했겠으나 세 권으로 질질 늘인 <그것>은 완전히 싸구려로 전락한 느낌이다. <샤이닝>에 감탄했다가 후속편 <닥터 슬립>을 보고 실망했던 때와 유사하다. 악이나 공포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거, 자칫 잘못하면 유치해진다. <그것>은 내게, 자칫 잘못한 듯 보인다.


아이들 각각 캐릭터는 잘 살아 있다지만, 남자아이 여섯에 구색을 맞추려고 넣은 듯한 여자아이 비벌리를 그리는 장면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처음엔 싸움도 잘하고 힘센 아이로 나오다가 차츰 그냥 맞거나 예쁜 게 역할이다. 그뿐인가, 일곱 아이들의 우정, ‘하나 됨’을 증명하는 방식은 어이가 없어서, “그러니까 내가 너희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일이야. 너희들 모두 내 친구라는 사실 말이야.”(3권 521) 남자아이들은 그냥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인데, 비벌리는 다리를 벌려서야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란 말인가. 지하 폐수관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곱 명이 합일(?)한 후에야 길을 찾는다니, 이건 뭐 막장이다. 또 다른 여자, 빌의 부인 오드라의 민폐는 전형적이라 할 말도 없고.


‘그것’을 나름 연구한 아이들의 대화에서 ‘글래머glamour’를 설명해준다. 각 개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존재를 말함이다. 데리 지하의 괴물이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는 근거가 되는 전설일 텐데, 이 단어는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에서 본 적 있다. <매혹>의 원제가 다름 아니라 <The Glamour>이고 프리스트의 소설에서는 보이지 않는 능력 같은 것이었지 싶다. 보이지 않는 능력, 쓰고 보니 <그것>이 유치해진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내게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공포가 무섭지 ‘피와 점액질과 구더기가 뒤섞인 액체’(3권 509) 따위는 우습다는 말이다. 혹시나 해서 읽었다가 역시나 삼류, 하고 덮는다. (세상에, 감히 킹 옹에게!) 아이들 중 작가가 된 중심인물 빌 덴브로가 킹 자신의 소설관 내지 예술관을 보여주는 듯해서 마지막 발췌.


취소 서류가 사흘 후에 학내 우편으로 되돌아왔다. 담당 교수의 서명이 있었다. 수강 최소 시점의 성적란을 보니, 그때까지 빌이 예상한 C마이너스도 아니도 그렇다고 불완전 이수도 아니라 F라고 적혀 있었다. 성적 밑에 교수는 이렇게 덧붙여 놓았다. “자네는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나, 덴브로?”
“그럼, 당연하고말고.” 빌은 자기의 텅 빈 방에다 대고 말하고 나서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웃었다. (1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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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들 중 아무도 못 봤고, 따라서 독자 또한 아무것 못 봤음에도 무섭다. 러브크래프트가 말한 미지에 대한 공포를 잘 이용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스티븐 킹의 &lt;그것&gt;보다 훨씬 우아하다. 넷플릭스 영화로 만들어진 모양인데, 텍스트가 주는 공포를 어떻게 화면에 옮겼을까. 시각 능력이 감염의 원인이 되는 이야기를 시각 예 ... more

덧글

  • 다락방 2017/10/30 08:39 # 삭제 답글

    저는 1권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누군가 저한테 댓글로 3권 읽으면 빡친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좀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측근님의 이 리뷰를 보니, 아 정말 빡치겠네요 ㅠㅠ

    비벌리 1권에서 남편한테 맞서 싸워서 제가 엄청 좋아했는데.. ㅠㅠ
  • 취한배 2017/10/30 16:35 #

    에그머니, 스포 미안함미다. 괴물의 정체 얘기하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이 부분은 그냥 말해버리고 말았네요;; 폭력 남편에게 한 방 먹이는 장면은 시원하기도 하지만 그전까지 정말 너무 싫잖아요.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고 애쓴 건 알겠는데 이런 의도적인 노력이 없는 부분에선 무딘 성감수성 쩔어요. 제가 본 킹은 그랬어요.ㅠ
  • 정윤성 2017/10/30 19:06 # 답글

    1권은 정말 빨려들 듯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이 무슨 총체적 난국인지... 비벌리의 그 장면은 정말 질색했어요. 게다가 서로 혀를 깨물고 늘어지는 최종결전에선 허탈하더군요. 정말이지 말씀대로 삼류였어요.
  • 취한배 2017/10/30 21:51 #

    서로 혀를 깨물고... 진짜.ㅜㅜ 정윤성 님은 책 몰래몰래 다 읽고 계시는 겁니꽈.ㅎ 정윤성 님과 킹 욕(?)을 공유하다보니 저번 <닥터 슬립> 때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그놈의 초능력과 염력; 이제 킹 끊어야겠어요.
  • 우연히 2017/10/30 20:03 # 삭제 답글

    왔는데. 블로그가 매우 예쁘네요. 술과 책이라니.
  • 취한배 2017/10/30 21:52 #

    우왕. 고맙습니다. 또 놀러오세요.ㅎㅎ
  • 다락방 2017/10/31 08:07 # 삭제 답글

    [별도 없는 한밤에] 에서 킹 아저씨 진짜 젠더감수성 깔고 갔는데요. 잇 에서 왜그런거죠? 킹 아저씨는 믿을만하다고 계속 생각해왔는데...(몇 권 안읽었지만요)

    슬퍼요.. ㅠㅠ

    저는 최근에 필립 로스를 버렸어요. ㅠㅠ 휴먼 스테인 읽고 버렸어요... ㅠㅠㅠ
  • 취한배 2017/10/31 21:51 #

    별한밤보다 잇이 더 옛날 작품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별한밤이 괜찮았다면 나아지고 있다는 거니까, 측근님은 더 지켜보실 수도 있겠네요. 전 이제 질렸어요.ㅠ
    누굴 버렸다는 말에 좋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좋아요.ㅎㅎ 저도 필립 로스 버린 지 몇 년 됐답니다. 휴먼 스테인, 에브리맨, 작가란 무엇인가 인터뷰 이후에요. 힝+그럼에도 방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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