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혹은 그림자 Smoking

빛 혹은 그림자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문학동네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가 부제다. 그림 18점과 소설 17편이 실렸다. 소설과 짝을 짓지 못한 그림은 표지에 실린 <케이프코드의 아침>(1950)이다. 케이프코드라니, 마이클 커닝햄이 『그들 각자의 낙원』에서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내 재를 뿌려주기 바라는 곳’이라던 프로빈스타운이 위치한 곳 아닌가. 물론 가까운 동네 트루로에 호퍼의 작업실도 있었겠고.


17명 작가 각자의 색깔대로 이야기가 툭툭. 유일한 공통점은 모두가 호퍼 그림을 좋아한다는 한 가지이겠다. 대리석 덩어리에서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본 형상을 단지 꺼내어 해방시켰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렇게 해방된 이야기들이리라. 엮은이 로런스 블록도 예상치 못했던 빈틈이 내게는 가장 큰 미덕으로 다가온다. 이야기 짝을 찾지 못한 <케이프코드의 아침> 말이다. 깎이지 않은 대리석 덩어리가 독자에게 주어진 셈이다. 호퍼 그림을 좋아하는 당신들, 자, 이제 당신의 얘기를 꺼내어 봐, 라고.



어젯밤에는 <케이프코드의 아침> 이야기를 꿈에서 읽었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로 시작했지 싶은데, 다음 문장부터는 무의식으로 가버린, 아름답고 완벽한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내 의식은 새 이야기를 꺼내게 될까.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작가들의 첫 문장, 멋진 첫 망치질들을 보면 영감을 받을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조각품을 나도 보고 싶다.


“젖가슴을 다 드러냈어.” (누드 쇼, 1941, 메건 애벗,「누드 쇼」)
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두 개였다. (바닷가 방, 1951,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바닷가 방」)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는지 보슈는 알 수가 없었다. (밤을 새우는 사람들, 1942, 마이클 코널리,「밤을 새우는 사람들」)
엔더비 부부는 음악의 방에 있었다. (뉴욕의 방, 1932, 스티브 킹,「음악의 방」)
그녀는 파란 플러시 천 의자의 쿠션 밑에 그것을 숨겼다. (오전 열한시, 1926, 조이스 캐럴 오츠,「창가의 여자」)
다시 그녀가 보인다. (밤의 창문, 1928, 조너선 샌틀로퍼,「밤의 창문」)
모자야말로 중요했다. (자동판매기 식당, 1927, 로런스 블록,「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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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 : 살인해드립니다 2017-10-22 01:28:21 #

    ... 져지는 과거와 차곡차곡 쌓여가는 현재가 연작의 맛 제대로다. 켈러 시리즈 더 남았다니 그것도 제대로다. 로런스 블록은 에드워드 호퍼 그림 소설집 &lt;빛 혹은 그림자&gt; 엮은이로 더 좋아진 경우다. 왠지 측은한 켈러 생각하다보니, 블록 시리즈 나머지 주인공들 세 명, 탐정(매슈 스커더)과 스파이(에번 태너 ... more

덧글

  • 다락방 2017/09/13 09:22 # 삭제 답글

    측근님, 응모할거예요??
  • 취한배 2017/09/13 12:44 #

    써보고는 싶어요.ㅎㅎ 측근님도 써줘용. 10월 31일까지래요.
  • 다락방 2017/09/13 15:47 # 삭제 답글

    뭔가 써보고 싶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아요 ㅋㅋㅋㅋㅋ
  • 취한배 2017/09/13 23:50 #

    응? 저 보이지 않는 탁자 밑에 숨겨놓은 술병이나 애인이나 여행 가방이나 갓 죽은 시체 같은 게 있을 것 같지 않아요? ㅋㅋㅋㅋㅋ
  • 달을향한사다리 2017/10/01 22:39 # 답글

    오~ 벌써 읽으셨어요? 전 여전히 보관함에 머물고 있는 책이에요. 이웃님 리뷰 읽으니 더 기대되네요^^
  • 취한배 2017/10/02 01:31 #

    이웃님 기대 많이 하시면 실망주의령.ㅎㅎ 읽고 나면 쓰고 싶어질지도 몰라욤. 사다리 님도 저 그림 소설 써주시면 좋긴 하겠... 우리 함께 응모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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