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티는 다섯 살 Smoking

제프티는 다섯 살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아작


정식 번역본으로 처음 만나는 할란 엘리슨. 노이즈 마케팅 전략인지, 작품을 읽기도 전에 홍보물로 작가의 괴팍한 성격을 주입받은 경우 되겠다. 단편선 세 권이 덜컥 한꺼번에 나왔고 일단 1권 하나만 사 봤다. 흘러넘치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주체했나 싶을 정도로 다채롭다. 여덟 편이 일견 여덟 작가의 작품을 모아놓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각각 다른 맛.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삭막하고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현대사회고발 풍에 때로는…… 음, 괴팍함 없지 않다.


예컨대, 인간이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생활하는 미래 어느 시기 야만과 폭력을 그린 「소년과 개」는 읽기에 무척 불편하다. 반면 곧장 이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지키는 기사」는 퍽 낭만적이고 아름다워. 어쩌랴, 계속 읽을밖에. 시간에 대한 몽환 「괘종소리 세기」가 ‘이럴 줄 몰랐지?’하고 한 방 먹이더니 삭막한 우주로 날아가 「인간 오퍼레이터」로 어렴풋한 희망을 보여준다. 깜찍한 소품 「쪼그만 사람이라니, 정말 재미있군요」가 마지막 작품. 「지니는 여자를 쫓지 않아」도 그저 부록 같은 느낌이었다면,


현대사회고발 풍이라고 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작품은 첫 수록작「“회개하라, 할리퀸!” 째깍맨이 말했다」다. 앤서니 버제스『시계태엽 오렌지』가 떠오른 건 단지 제목에서뿐 아니어서, 버금가게 좋다. 어쩌다 보니 수록 작품을 다 언급했군. 하나 빼고. 그렇다, 아껴두었던 표제작을 말할 때다. ‘나’의 친구 제프티는 다섯 살이고 제프티는 다섯 살로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성인이 된 ‘나’의 과거 상징으로도 읽혀 말도 못하게 멋지다. 양철북을 맨 귄터 그라스의 오스카가 좀 무서웠다면, 제프티는 슬프다. 다시 가져볼 수 없는 유년기 과거가 그러하듯이.


현재가 과거의 존속을 시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정말로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생존이 발톱과 이빨과 촉수와 독액과의 싸움으로 그려지는 모험물 어디에도 현재가 과거에 관계될 때 얼마나 사나워지는지를 이해하는 인식은 없었다. 현재가 ‘지금 이 순간’이 되기 위해, 그래서 그 무자비한 이빨로 ‘지금 이 순간’을 갈가리 찢어내기 위해, 얼마나 맹렬하게 과거의 것들을 기다리며 도사리는지 어디에도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다. (59,「제프티는 다섯 살」)


엘리슨은 여든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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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galmA 2017/09/10 19:29 # 삭제 답글

    저랑 같은 시기에 읽으셔서 반갑네요^^ <나는 입이 없다...> 2권 연달아 읽으면 질려버릴까봐 좀 겁내하고 있습니다^^
  • 취한배 2017/09/11 00:00 #

    '이 정도 스펙트럼'이라는 말은 저도 썼다가 '다채롭다'로 바꿨는데 말입니다, 정말 폭 넓은 엘리슨이었지요? 2권은 저도 아껴두려고요. 독후감 쓰고 알라딘에 링크 걸러 가면 거의 늘 뵙는 이름의 주인공이십니다, 아갈마 님. 지금 제 손에 든 <빛 혹은 그림자>도 그럴 것 같은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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