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넌에게 꽃을 Smoking

앨저넌에게 꽃을 - 8점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빌리 밀리건>(1981)의 작가다. 무려 1959년 작. 휴고상과 네뷸러 상을 받았으며 아시모프의 찬사가 장식하고 있다. 즉, SF 되겠다. 논픽션 대작 <빌리 밀리건>에서 잘 보았듯, 심리학 전공 작가다. 거기에다 보고서-일기 형식이니 초반에는 니진스키의 <영혼의 절규>를 떠올리기도 했다만, 소설이다. 희한하게, 가슴이 아픈 건 똑같아서 앨저넌을 빌리 밀리건이 아니라 니진스키 옆에 꽂아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P. S. 어쩌다 우리 집을 지나갈 일이 잇으면 뒤뜰에 잇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바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44)


앨저넌은 쥐다. 실험용 쥐. 제목으로만 본다면 실험실 동물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기도 하다. 저 추신을 마지막으로 쓴 우리의 주인공은 찰리다. 뇌수술을 받아 식물인간이 되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맥머피와는 달리 우리의 지적 장애인 찰리는 ‘천재’가 된다. SF라고 했지. 맞춤법이 점점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따뜻함이 사라지고 차가운 ‘천재’ 찰리가 되어 불안감을 고조하는 동시에 통쾌함까지 준다. 통쾌함? 인생에서, 사람관계에서 지능이 최고 가치가 아님을, 우리도 찰리도 찰리 주변인들도 알게 된다는 면에서.


“그러나 나는 지능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배웠어요.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이 위대한 우상이 되어 있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간과한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인간적인 애정의 뒷받침이 없는 지능과 교육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이오.” (277)


‘천재’ 찰리에게서 내가 느낀 불안감은 찰리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과 포악함과도 같이 가는 듯했다. 찰리의 외로움을 진정으로 알 만한 이는 수술과 실험을 진행한 의사나 박사들도 아니고 찰리의 부모나 동료도 아니며 어쩌면 앨저넌일 거다. 앨저넌과 같은 처지임을 ‘바보’ 찰리도 ‘천재’ 찰리도 직감했겠다. 쥐라면 기겁하는 나조차 ‘꼿’을 바치고 싶은 작은 무덤이다.


일기 형식의 단순한 장치에, 단순한 플롯에, 지능에 대한 편견, 과학실험과 업적 등에 대한 많은 문제 제기. SF라고 했지. 슬그머니 끼어드는 틀린 맞춤법이 이렇게 슬플 수도 있구나. 1927년 탄생한 대니얼 키스는 다음 통합검색에서 아직도 만 90세라고 나온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2014년 향년 87세가 대세이고 옳지 싶다. 이 책은 따끈한 새 번역본으로 사서 볼걸 그랬다. ‘~했소’ ‘~말이오’라는 ‘천재’ 찰리 말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정신지체 장애자’라는 용어도 이젠 머쓱하고.


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황금부엉이

“하지만 저는 생명이 없는 물건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인간입니다.”
그는 잠깐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이지, 찰리. 나는 현재의 일을 말하는 게 아니야. 수술 전의 일을 말하는 거지.”
독선, 오만…… 교수도 때려주고 싶다.
“저는 수술 전에도 인간이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잊고 계셨다면…….” (107)


 

덧글

  • 다락방 2017/08/18 11:15 # 삭제 답글

    저도 몇 해전에 이 책읽고 좋았거든요. 천재가 되었다가 다시 그렇지 않은 상태로돌아가는 걸 잘 써놔서(맞춤법으로 표현되는 게 참 놀랍지 않아요?), 작가에게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 전에는 드라마로 한장면 정도 보았던 것 같아요. 이거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만들었던 거 아세요?

    지금 찾아보니 2006년에 [안녕하세요 하느님]이란 드라마였네요. 그때는 별 흥미 없었는데, 친구가 이 드라마 보면서 원작이 좋다고 저에게 선물 해줬었거든요. 진짜 재미있게 읽었었어요. 아 새록새록 하네요. 앗 그러고보니 몇 해전이 아니라 십년전이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아 시간 진짜 빠르네요.....
  • 취한배 2017/08/19 01:30 #

    안 그래도 리뷰들마다 그 드라마 얘기가 있어서, 아, 그런갑다, 했어요. 원작이 좋으니까 드라마도 좋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맞춤법 장치의 맛은 글을 따라왔을까 싶더라고요?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빠르다더니, 정말 그렇죠.ㅜㅜ 그리고 원작이 좋다고 선물해주는 친구 정말 좋네요. (땡투하게 페이퍼에 책 링크 걸라는 친구 다음으로.ㅋㅋㅋㅋ) 내처, 저는 이제 이것과 비슷한 <어둠의 속도>를 읽어볼까 하고 있답니다. 살짝 펼쳐보니 이것도 좋을 것 같아요!
  • 한영광 2017/08/21 21:48 # 삭제 답글

    저는 사실 글쓴님이 댓글에 언급하신 '어둠의 속도'를 먼저 읽었고, 실로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느낀 반면에 '앨저넌에게 꽃을'은 읽다가 그만 지루하여 책을 덮고 말았습니다.

    '삼체' 리뷰에서 SF장르 특유의 시간에 따른 진보성을 이야기하셨던데, '앨저넌에게 꽃을'은 그야말로 옛날 SF처럼 느껴졌달까요. 같은 옛날 SF라고 해도 아시모프나 클라크는 나름대로 좋던데 말이죠.
  • 취한배 2017/08/22 01:03 #

    앨저넌은 번역본이 꽤 여럿 있는 것 같던데, 어느 본으로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읽은 동서문화사 것도 참 별로여서 아쉽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번역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과연 예스러움이 좀 있었죠? 더구나 <어둠의 속도>를 읽으신 다음이면 더 그랬으리라고 이제는! 저도 알겠어요. 오늘 읽고 왔거든요.ㅎㅎ

    <삼체> 리뷰도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앨저넌을 어깨 삼아 더 진보한 <어둠의 속도>라 감동했답니다. 한영광 님 말씀하신대로 새삼, 앨저넌(키스)과 비슷한 시대의 아시모프와 클라크네요. 그래서 대가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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