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Smoking

하품 (특별판) - 8점
정영문 지음/작가정신


잠시 우리는 아무 말도 않고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지만 그것을 견디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게 견딜 수가 없군, 나는 중얼거렸다. (55)


내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줄기차게 이럴까. 문장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사람 있다면 내게는 정영문이다. 당연히 명시적으로는 아니고 투명하게. 쉼표에, 자간에, 행간에, 엉뚱한 유머에, 이상한 슬픔에, 그리고 무엇보다 권태와 소멸감에. 하품, 하지는 않았고 <오리무중에 이르다>를 아직 사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동물원 벤치에서 주고받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언급된 ‘나’의 오리궁둥이 때문에 떠올린 오리무중은 아니다. 감상문보다 더 긴 발췌문이라니 속상하군, 중얼거린다.


나의 삶은 어느 한순간, 작은 충격에도, 아니, 아무런 충격이 없이도 완전히 무너져내릴 수도 있는 허술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다시 말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옳을, 이 삶, 그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어. 그 시작에서부터 무산된 이 삶은 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지도 모르지. 내게 있어 삶이 의미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에서였을 뿐이야, 그가 말했다. (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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