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NoSmoking

영초언니 - 8점
서명숙 지음/문학동네

 

다시 영초언니를 떠올린 건, 오랜 세월 밀쳐두었던 언니에 대한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순전히 그 여자 최순실 때문이었습니다. (08, 프롤로그)


그래 맞다. 특검조사 받으러 가던 ‘그 여자’의 어이없는 샤우팅과 오버랩되던 몇몇 장면들이 저마다 있었을 거다. 서명숙 샘의 경우 영초언니였고, 덕분에 우리 앞에 이런 멋진 책이 나타나줬으니 그 여자 최순실에게 고마워해야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름마저 예쁜 천영초. 서명숙 샘의 시대와의 조우, 유시민 작가 추천사에 의하면 ‘시대에 대한 첫사랑’에 있어 상징적인 고유명사이겠다. 서명숙 샘의 성장기이자 청춘의 기록. 치열한 운동과, 또한 ‘비겁해지기로’ 했던 고백까지도 가감 없다.


박 정권이 촛불혁명으로 끝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고 난 기분이 얼마나 꿀꿀했을지 새삼 생각해본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겨우 한글을 뗀 주제에 추모의 글을 써야했던, 그리고 낭독하면서 북받쳐 실제로 몇몇 또래들은 울기도 했던 나와는 차원이 다른 1979년 가을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10ㆍ26을 감옥에서 보냈던 청춘들이 그 독재자의 딸을 겪는 시절은 얼마나 치가 떨렸을까.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들이 역사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내상을 입는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280-281)


이런 책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단어이긴 한데, 잘 쓴 글의 다른 말 정도로, ‘페이지 터너’ 맞다. 뉴스의 한 장면에서 떠올린 개인사가 다름 아닌 굵직한 현대사로 꿰어 맞춰지는 일, 더없이 소중해서 기대했고, 기대에 부응한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글 가운데, 옥중 딸에게 보내는 서명숙 샘 어머니의 편지에서는 눈물이 핑그르 돌기도 했고 저자가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풋, 웃음이 나는 지점도 있었으니 내게는 이런 부분,


그때 인상적인 신입교사가 들어왔다. 심재철의 소개로 서울대 경제학과 1학년생이 들어왔는데 이름이 유시민이라고 했다. 눈망울이 소처럼 커다란, 비쩍 마른 친구였다. (74-75)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헐렁한 가죽점퍼를 입은, 눈매가 날카롭고 얼굴이 네모꼴인 청년이었다. 썩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서울대 71학번 이해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엄주웅과 춘천교도소 동기라면서 얼마 전에 출소했다고 했다. (246)


‘선생님’은 무거울 것 같고, 자꾸 ‘샘’ 이라고 적은 이유가 있다. 실제로 ‘선배’가 아니라 ‘샘’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서명숙 샘과는 취재를 같이 간 적 있다. (사진기자질이 내 직업이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2박 3일 정도 되는 꽤 긴 출장길을 함께했다. 술자리도 당연히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 맞담배도 없었다. <여성 흡연 잔혹사> 이후였던 터이겠다. ‘샘’ 빼고 불러볼까, 이제야, 이제라도, 알게 되어 기쁘고 고맙다, 명숙언니.



덧글

  • 나른한 치타 2017/07/28 23:57 # 답글

    와 이거 되게 재밌겠네요ㅋㅋㄲㄲㅋ 리뷰 잘 읽었습니당!!
  • 취한배 2017/07/29 00:27 #

    정말 재밌어요. 그러니까, '재밌다'고 말하기는 좀 미안한 재밌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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