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셸 Smoking

넛셸 - 10점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문학동네


닳고 닳은 <햄릿>이 이언 매큐언을 거치니 이런 지경, 아니 경지에 이르는구나. 단어와 문장과 사색의 향연이다(번역을 어떻게 했을까 싶다). 우유부단함, 결정장애를 예술적으로 보여주었던 햄릿의 머릿속은 정말 이랬을 것만 같다. 머릿속이라고 했다. 매큐언의 햄릿은, 행동으로 옮길 몸이 아직은 없는 의식-태아이기에 그렇다. 이런 장치만큼 햄릿을 잘 그릴 수 있는 설정이 없었겠다고, 읽고 나니 수긍이 간다.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물론 공기를 진동하여 소리가 발생할 수 있는 지상의 물리적인 입이 없으니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또는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로 바꿔야겠다. 햄릿의 진정한 장기(長技). 그것도 벽-어머니의 배를 통한 감각과 상상으로 유추한 현상에 대한 고민. 그리고 질문. ‘To be’는 일찌감치 던져진 참이고, 어떻게 변주될지 가장 궁금했던 저 유명한 ‘이것이냐, 저것이냐.’ (발췌가 좀 길다1)


얼마간의 발육기를 거치고 나서 나는 거기 함축된 의미를 파악했다. 생물학은 운명이고, 운명은 숫자로 표시되며, 이 경우 이진법이다. 절망적일 정도로 단순했다. 모든 출생의 핵심에 있는 이상한 필수 요건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것이냐-저것이냐. 그 외에는 없다. 눈부신 출생의 순간 아무도 사람이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딸이다, 아들이다, 라고 외친다. 분홍이냐 파랑이냐(…) 오직 두 개의 성. 나는 실망스러웠다. 인간의 몸과 마음, 운명이 그토록 복잡한데, 인간은 다른 어느 포유동물보다 자유로운데, 다양성은 왜 제한되어 있단 말인가?  (193-194, 강조는 원문)


잠깐 웃기도 했던가? 사실은, 여기서 웃어도 되나, 매큐언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정색하며 이어지는 심각한 문장에, 웃음기를 싹 거두고 웃지 않은 척 했다만 다시 봐도 조금은 웃긴데. '사람이다!'에서 풋, '분홍이냐 파랑이냐'에서 푸흡(참는다). 아무래도 나는 매큐언에 주눅 들어 있나 보다. 어디 한 군데 들어낼 곳이 없는 빼곡한 문장들의 결합력과 강렬함이 이번에도 어김없어서 주눅, 계속 들기로 한다.


<햄릿>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장면은 아버지 유령이 등장하는 장이다. 매큐언은 이를 어떻게 데려오는지 어디 두고 보자(주눅 좀 덜 들어보자),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만…… 자세한 설명은 자제하련다. 다만, 충격적인 효과로 슬쩍 끼워 넣은 게 가히 천재적이다. 벤자민 버튼도 아니면서, 태아로 돌아간 고령의 작가. 존경한다. 내 기 따위 마구 죽여도 좋으니 부디 벤자민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리고 마침내 햄릿의 탄생. (발췌가 좀 길다2)


연이은 진통의 파도, 고함과 울부짖음, 고통이 멎게 해달라는 애원이 계속된다. 무자비한 진전, 가차 없는 배출. 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뒤에서 탯줄이 풀린다. 나는 앞으로, 밖으로 나아간다. 냉혹한 자연의 힘이 나를 짜부러뜨리려 한다. 내가 지나는 곳은 삼촌의 일부가 반대쪽에서 너무도 자주 드나들었던 그 구간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날에 질이었던 것이 지금은 자랑스러운 산도, 나의 파나마운하고 나는 그보다 훨씬 크다. 아주 오래된 정보라는 화물을 싣고 위엄 있게 천천히 나아가는 위풍당당한 유전자의 배다. 뜨내기 남근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한동안 나는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가 되고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지금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은 내 어머니다. 모든 어머니처럼 머리 크고 시끄러운 아기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비명을 지르는 내 어머니.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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