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Smoking

삼체 - 10점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단숨
 

<콘택트>의 확장 버전인가. 그럴지도. 현재와 후대의 SF작가들은, 비단 SF작가들만 그렇겠느냐만, 선배 작가들의 어깨가 유리한 점이자 틀림없이 부담이기도 할 터다. 상상력은 말할 것도 없고 과학적 사실이나 도덕적 진보성 모두에서 적어도 퇴보의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될 부담감이 SF에서는 특히 심할 것만 같다. 이 작품의 경우 류츠신이 올라탄 거인들로는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테드 창, 칼 세이건,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할 숱한 과학자들까지도 있겠다. 거기에 더해 중국 색깔과, 시의성 짙은 게임 세계까지 엮어 외계 존재와의 접촉(콘택트)를 그려낸 솜씨가 그저 놀랍다.


추리물 같은 분위기로 시작. 중국의 현대사를 훑는가했더니 외계 전파 송신과 수신. 삼체 세계에서의 만세력 작성 게임, 다가오는 외계 지적 생명체를 대하는 자세 등이 한데 어우러져 탄탄한 모티브와 전개를 이룬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폭정과 그로 인해 인간에 대해 갖게 되는 절망과 증오가, 세 개의 태양 운행 규칙을 파악할 수 없어 행성을 떠나려는 센타우루스 문명과 만나게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인류의 과학, 종교, 철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역시 큰 외신, 외계 지적 생명체다.


‘행성 사이를 뛰어넘어 우리 세계에 올 수 있다면 그들의 과학은 이미 상당한 단계로 발전했을 것이고 과학이 그토록 발전한 사회라면 더 높은 문명과 도덕 수준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388)되는 대상 말이다. 류츠신의 외계 생명체가 보유한 과학 수준, 과연 상당한 단계로, 공간 이동은 광속의 10분의 1 밖에(?!) 안 되면서 후반부에 자세하게 늘어놓는 양성자 ‘쇼’가 내게는 거의 판타지 수준이다……만. ‘제일 변화무쌍하고 제일 정신 나간 상상을 뉴스 보도처럼 진실하게 쓴 것’(447)이 좋은 과학소설이라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씀이시다. 그렇겠거니, 했다.


그럼 과학을 제외한 다른 면은? 어쩌면 이게 좌절할 부분일지도 모르겠는데, 놀랍게도 인간과 닮아 있다. 200여 차례 생멸을 반복한 문명에서 그들이 터득한 생존의 방식은 ‘공포, 슬픔, 행복, 아름다움 등 모든 감정’을 떼어내 버린 ‘냉정함과 무감각’(397)이다. 그러나 지구 인류를 객체로 대하는 자세가, 인류가 그들을 대비하여 갈렸던 분파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살기 위해 저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견과 저들도 살아야 한다는, 작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른 목소리도 있다는 점에서.


아니나 다를까 홍안 지구 전파 관측소 예원제와, 센타우루스 알파의 전파 감청원 1379호가 외계로부터의 전파를 수신했을 때 내뱉는 독백이 같다. 거울 이미지로써 지구인과 센타우루스 알파 생명체에게 같은 대사를 주면서 류츠신도 그런 생각 아니었을까. 사실, 힌트는 지구에 있다는 것. 우리가 매일 살고 보고 느끼고 배우는 여기에.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 멀리, 또 깊이도 본 류츠신 자신이 이제 거인의 행렬에 들게 되지 싶은 삼부작 <삼체> 중 1부, ‘지구의 과거’다. 


조용한 한밤중에 우주는 자기를 자세히 듣고 있는 사람에게 광활한 황야를 보여주었다. (…)
그러나 오늘, 파형 모니터를 훑어본 감청원은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전문 인력이라고 해도 육안으로 파형에 정보가 담겨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우주 잡음의 파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감청원은 지금 눈앞의 파형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에 영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눈앞의 전파가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만든 것이라고 확신했다! (391)



구판표지는 이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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