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 Smoking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 - 10점
엘리자베스 매켄지 지음, 이지원 옮김/스윙밴드

 

나는 소스타인 베블런을 사랑한다. 지금껏 그의 인생을 샅샅이 들여다보았지만, 그에게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이상주의자였던 젊은 시절에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기득권 세력에 저항했다. 그는 너무나 자유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온갖 타협을 마다치 않고 지켜냈을 일자리를 잃었다. 지배층에게 그는 옆구리의 가시 같은 존재였다. (169)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김성균 옮김/우물이있는집


엉뚱하고도 귀여운 제목의 이유. 사회사상이나 경제학 서적이 아니라 소설 베블런이다. 소스타인 베블런 전기가 아니라, 엄마가 좋아하는 경제학자의 이름을 딸에게 준 경우. (제임스 테일러를 좋아한 엄마에게서 그 이름을 받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매한가지 되겠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사랑스럽다. 긴 소설은 일단 좀 믿고 보는 경향이 내게는 있는데 긴 분량이 그야말로 미덕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베블런과 폴과 부모와 친구들 각각이 이제는 내 지인들 같다. 이들을 모두 살아있게 하는 필력이 놀랍다. 따뜻하고 영리하고 선하다.


결혼을 앞둔 베블런과 폴 커플의 좌충우돌 서로를 알아가기. 특히 상대방 부모를 겪는 모습이 참 좋다. 약간은 별난 가족들임에 틀림없으나 사랑하는 짝꿍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그들까지도 포용하게 되나 보다.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존중하며 한 가족이 되는 것이겠거니. 누구보다도 베블런의 건강염려증자 엄마, 멜러니가 가장 인상적인데 그이마저도 종국에는 사랑스럽더라. 베블런의 엄마니까.


“폴은 아주 잘생겼구나.”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지만 둘이 정말 잘 통하는지는 아직 못 느끼겠어.”
“우리 여기 온 지 이제 5분 됐어요.”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은 아니길 바란다.” 멜러니가 말했다. “제발이지 아무쪼록.” (110)


내 엄마가 샤를로를 처음 보고 내게 한 말이 바로 저랬다. 첫 만남에서 단박에 알아보는 게 어찌나 놀라웠던지. 같이 외출하려고 샤를로가 나를 데리러 집에 잠시 들렀던 때였고 내가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부엌에서 엄마는 샤를로를 접대(?)했다. 멜론인가를 깎아서 대접했는데 그걸 글쎄 싹 다 먹어버리더라는 거다. 내가 곧 나올 참이었는데 내 몫을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얘기. ‘샤를로 혹시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 아니야?’ 그날 밤 엄마의 평가. 헐. 완전 정확하셨어. 나는 몇 년을 만나보고 알게 된 사실이자 헤어진 이유가 결국 그것이었는데. 그런 안목은 지금까지도 내게는 없고 엄마한테만 있다. 아마도 엄마들의 현명함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진짜야! 당신은 엄마 괜찮았어?”
그는 응, 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소리를 냈다.
“정말 괜찮았어?” 그녀는 묻고야 말았다. 데이지를 꺾으려다 몸의 균형을 잃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심한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녀는 , 이라는 말이 듣고 또 듣고 싶었고, 그 말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었다. (143, 강조는 원문)


저 ‘응’이라는 거 말인데,


“오늘 저녁으로 타코 어때?”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다행이야.” 그가 그녀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그래, 하는 습관 말이야.” (13, 강조는 원문)


‘그래, 하는 습관’이 너무 그리웠던 한때를 보냈다. ‘아니’병에라도 걸린 양 아니 아니하는 상대를 겪어보니, 저 ‘구름 한 점 없이 확 트인 하늘’(니체) 같은 그래와 응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다시금 알게 됐다. 엄마가 보셨더라면 글쎄, 첫 눈에 이랬을지도. ‘아니병에, 나르시시스트구나.’ 나는 2년 걸렸다.


베블런은 옥수수를 좋아하고 폴은 싫어한다. (나도 싫어한다.) 베블런의 ‘옥수수 철학’이 결혼을 어찌나 잘 설명하고 있는지. 옮기고 싶은 문장은 길고 아름다우니까 생략하고 결론이 이렇다. ‘배우자의 선택이 남은 인생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그가 싫어하는 것들은 차례차례 폐기처분될 것이다.’(107) 다시 샤를로로 돌아오자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들을 폐기처분할 용기와 과단성 같은 거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나야, 술이야?”는 서로에게 금기시된 질문이었다. 금기시해서, 결혼하지 않았고 그건 서로에게 최고로 잘한 짓이었다.


“그래서, 나야, 옥수수야?”
그제야 그녀는 평정을 되찾았고, 그들은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107)




덧글

  • 2017/06/28 01:35 # 삭제 답글

    하하하 나야 술이야 ㅋㅋㅋ 빵터졌네요. 즐거운 이야기일 것 같아요. 이번에 애인과 엄마가 처음 만나는데 서로 어찌 생각하려나 너무 궁금해서 남일 같지 않은 인용구입니다 ㅋㅋ
  • 취한배 2017/06/28 16:48 #

    오오오. 긴장되시겠어요!ㅎㅎ (엄마는 첫인상 감별사.ㅋㅋ) 재밌는 소설이긴 한데 이 엄마가 굉장히 힘든 사람이라 포 님 마음에는 안 들 수도 있음. (그럼에도 추천해 봄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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