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설 Smoking

러시아 소설 - 4점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어쩌다 보니 연이어 러시아. 제목까지도 ‘러시아 소설’인데 아이 깜짝이야, 작가가 알몸으로 다가온 듯한 당황스러움. 그러니까 저 ‘소설’ 앞에 ‘자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작품인데, 글쎄. 카레르의 이전 소설 『적』,『콧수염』,『겨울 아이』를 읽었고 소설로써 좋아했다면 이번에는 작품이 아니라 작가를 자연인으로써 평가하게 될 수밖에 없을 긴 글이랄까. 이런 오만함, 괴팍함, 자기중심적임, 자의식 과잉의 마초스러움. 한 마디로 내게는 매력 잃은 ‘남자’가 돼버렸다. 작품 중에 나오는 카레르 자신의 단편에 대한 필리프 솔레르스의 평가는 그대로 내 것이기도 하다.


그 역시 『르 몽드』가 이런 유치한 포르노 나부랭이를 게재한 것을 놀라워하면서, 학술원의 종신 원장님*께서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하다는 식의 농담으로 글을 맺고 있었다. (*카레르의 어머니 엘렌 카레르 당코즈 여사를 말함-옮긴이 주, 324)


자기 동거인 소피에게 바치는 ‘포르노 나부랭이’를 『르 몽드』 주말 판에 실어, 그 신문을 손에 들고 기차에 오르기로 되어 있던 소피에게 자신의 작품이 ‘수행적 발화’가 되기를 기대하는 실험. 이런 상황이 부럽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나, 나로선 손발이 오그라들어 혼났다. 모든 게 자기가 짜놓은 대로 실행되어야 하고 상대는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으로서 마침맞은 배우가 되어 숱한 관객들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피날레를 연출하게 되리라는, 공공장소에서의 ‘이벤트’격일 저 연애편지. 기차에서 자위는커녕(그래, 포르노다) 짜증이 치밀어 따귀를 올려붙이고 싶다. 이 소설에서 내가 본 하나의 미덕이라면, 자신에 대한 상대의 의견도(이건 굉장한 거다. 오로지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는 자로서는) 간혹! 있다는 것일 텐데, 소피의 일기를 훔쳐보고(그래, 일기까지 훔쳐본다. 끔찍해라.) 하는 얘기.


그때 난 오로지 내 얘기만 했단다. 내 삶에서 러시아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만, 러시아어로 내 어린 시절을 쓰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만 말하고, 마치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에 그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난 그녀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125)


겪어봐서 내가 안다. ‘자기 옷이라면 바느질 한 땀까지 보여주고 자랑하면서 정작 나는 원피스를 입었는지, 제일 아끼는 정장을 입었는지, 아니면 거대한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언급하지도 않는’(제프리 클루거,『옆집의 나르시시스트』중) 부류. 멀쩡하다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순식간에 불쑥 화를 내거나 뚱해지는 것 또한 카레르의 일화에서 드러나던데, 작가연하는 어떤 이는 이를 ‘예민함’이라고도 하더라만 내가 보기엔 그냥 이기적인 괴팍함에 다름 아니다. 예민함이라니, 오히려 무심함이겠지. 자신은 그냥 기분상 태도를 바꾼 정도이지만 상대는 그걸로 인해 쩔쩔매게 하는 괴팍함. 기분이라는 것을 오직 자신만이 가진 양. 상대의 안절부절을 즐기는지는 모르겠다. 하나의 미덕은 얘기했고, 바라는 점 하나는, 이 작품을 쓴 후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독단적인지 깨달았으면 하는 정도.


작품은 작가를 드러낼 수밖에 없음을 안다. 옷을 벗음으로써, 그리고 입음으로써. 오만, 괴팍함, 자기중심적, 자의식 과잉의 알몸이라고 앞에서 썼는데, 나는 작가들의 ‘외투’(이승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불평, 조롱, 바닥없는 우울일지라도 겸손, 배려, 지적이고 따뜻한(정치적으로 올바른) 유머의 외투를 꽁꽁 겹쳐 입은 글 말이다. 자전적 소설로 발가벗고 온 카레르는 민망하기만 하고 감동이 없다. 있다면 마지막 문장이자 헌사일 텐데 이조차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내가 이미 카레르에게서, 관객이 필요한 나르시시스트 퍼포머를 보아버렸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됨됨이와 작품 간의 함수, 많은 논문이 동원됐겠지만, 한 마디로, 없지 않다. 나에겐 그 값이 큰 듯한가? 어쩌면. 카레르가 내 아들이나(카레르는 어머니에게 이 작품을 바쳤다) 애인이(전 동거인과의 관계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니어서 다행일 딱 그 정도로, ‘자전적’ 아닌 ‘소설’ 카레르라면 읽겠다. 이런, 재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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