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NoSmoking

해부학자 - 10점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박경한 감수/사이언스북스

 

인간은 오로지 겉으로만 인간일 뿐.
피부를 제거하고, 해부하면
곧바로 ‘기계 장치’가 나타나니.
-폴 발레리 (173)


같은 제목으로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소설도 있지만 이  『해부학자』는 빌 헤이스의 것이다. 불면증(『불면증과의 동침』, 2001)과 (『5리터』, 2005)에 이어 이번에는 해부(2008). 150년 전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한 의학 전공 서적 『그레이 해부학』을 쓰고 그린 두 헨리 이야기다. 헨리 그레이(글)+헨리 밴다이크 카터(삽화)를 파헤치기 위해, 글쟁이 빌 헤이스는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자료연구와 자세를 보여준다.


자세? ‘강의 첫날, 여섯 번이나 조교로 오해를’(27) 받으면서 1년 넘게 의과대학 청강생으로 해부 실습에 임한다. 그러니까, 한편으로 빌 헤이스의 해부 실습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헨리(들)의 자료가 있다. 150여 년을 왔다갔다하며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가 지루할 틈 없이 잘 구성되어 글쟁이로서의 진가를 또 다시 발한다. 불면증과 피, 거기에 해부까지. 이제 과학 에세이스트라고 불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빌 헤이스다. 


그녀가 굴심방 결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동안-이 세포에서 만들어진 전기 신호가 심장 전역에 위치한 다른 세포로 퍼져 나가면서 심장을 수축ㆍ박동하게 만드는 것이다.-나는 해부학과 은유의 그 완벽한 만남에 그만 아찔한 느낌이 들고 말았다. 우리 몸에서 굴심방 결절은 복장뼈(흉골, sternum) 바로 밑에, 그러니까 가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포나 사랑이나 기쁨을 맨 처음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곳이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심장이 뛰고 철렁하고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부분이 바로 거기였기 때문이다. (64)


‘해부학과 은유의 그 완벽한 만남’ 같은 부분은 글쟁이에게서 내가 기대했던 바이기도 하고 어김없이 그러하여, 무심한 듯한 헤이스의 ‘칼질’과 함께 전개되는 글은 아름답고도 따뜻하다. 더구나 오랜만에 다시 만난 빌 헤이스가 더 좋아진 이유가 있는데, ‘이번이 시체를 살펴볼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실습 중에는 시간상 해부를 못 하고 넘어간 부위였던 턱관절(악관절, temporomandibular joint, TMJ)을 살펴보기로 했다.’(231) 왜?


나는 오래전부터 이른바 공식 명칭으로는 턱관절 장애-짧게 줄여서 그냥 TMJ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 TMJ 장애 때문에 나는 턱에 대해서는 항상 예민하다. (232)


이런 반가울 때가! 재작년 여름이었던가, 치과병원부터 시작하여 결국 대학종합병원 구강내과 구강안면 통증클리닉까지 거쳐 내가 진단 받은 병명이 턱관절 장애였다. 물리치료와 약물복용 이후 다시 특별히 아픈 증상은 없지만 나 역시 ‘턱에 대해서는 항상 예민하다.’ 정해진 실습 과정이 다 끝나고 헤이스 자신만의 고유한 문제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헤이스 식으로 말하자면 ‘그 ‘딱’과 ‘뚝’ 소리의 원천을 찾아가는‘(233) 몇 시간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고맙던지.


거의 2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턱관절의 거의 완벽한 표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표본에는 이 부위의 가장 섬세한 특징 가운데 하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관자뼈(위)와 아래턱뼈(아래) 사이에서 일종의 충격 흡수재 작용을 하는 작은 연골 원반이었다. 이 원반이 손상되거나, 또는 내 경우처럼 닳아 버리면 TMJ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233)


나의 충격 흡수재도 닳아 버린 모양이다. 내 무릎 관절만 생각해도 자연스레 연상이 된다. 헤이스도 아마 무릎에 관절염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저 ‘딱’과 ‘뚝’ 소리, 그래…… 중년 소리. 자신의 해부 실습과 헨리의 기록 외에도 해부학에 관한 역사상 일화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라진 해부학 스케치들의 행방이라든지 베살리우스의 르네상스 시기 대작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를 도서관에서 직접 만져보는 대목도 흥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헤이스와 16년 동안 함께했던 동반자 스티브가 있다. 『해부학자』를 포함하여 헤이스 전작 모두에서 해맑게 등장했던 이로, 헤이스가 이 책 에필로그를 쓰던 무렵 사망한 모양이다. 시체를 그렇게 들여다보고 파헤쳐보았더라도 해부학은 죽음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죽음은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생명을 규정하는 상징’(395)으로서의 움직임. 해부학이 그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알게 해준다면, 죽음은 스티브가 가르쳐주었다. 헤이스의 근간 『불면의 도시: 뉴욕, 올리버,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스티브의 죽음 이후 뉴욕으로 터전을 옮겼고, 아마도, 또 다른 죽음을 헤이스는 배웠을 것이다. 그렇다, 제목의 저 올리버 색스.


거꾸로 생각해 보자면, 우리는 육안 해부학을 통해 생명을, 인간의 생명을 배운다. (…) 그렇다면 생명이란, 또는 생명을 규정하는 상징이란 움직임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눈을 깜박이건,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팔다리를 휘두르고 숨을 헐떡이며, 뭔가를 향해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 나가는 것. 어떤 목표를 향해, 어떤 결승점을 향해, 그 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395)



 


사진의 글자가 잘 안 보일까봐 추신. 전작들의 헌사가 ‘스티브 번에게,’ ‘스티브 번에게,’ ‘스티브 번에게 이 책을 바친다’다. 헤이스의 근간 첫 페이지가 ‘올리버 색스에게’일지, ‘올리버 색스에게 이 책을 바친다’일지 궁금하다. 후자에 500원 걸고 싶은데 누구에게 주(거나 받)지? 절판이 안타까운 사이언스북스의 빌 헤이스 전작 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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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맙습니다》에서 빌 헤이스 이름을 보고 아이, 이런 사랑꾼들 같으니, 사랑스럽기도 하지, 했던 기억이 있다. 빌 헤이스의 16년 동반자 스티브의 죽음을 알게 된 《해부학자》이후 안부를 전해온 《인섬니악 시티》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온 더 무브》후반부와 나란히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예컨대 이런 장면. 똑같은 2009년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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