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날마다 축제 NoSmoking

파리는 날마다 축제 - 8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이숲


그토록 많은 나무가 있는 파리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어느 날 밤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다음 날 아침 봄이 갑자기 눈앞에 와 있음을 실감하곤 했다. 그러나 가끔 엄청나게 내리는 찬비가 오는 봄을 막아서 봄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우리가 인생에서 한 계절을 잃어버리는 듯한 아픔을 느끼기도 했다. (44-46)


봄이라서 파리 생각이 났는가 보다. 계절적으로 봄과 파리는 딱 맞아떨어지는 조합은 아닐 수도 있을 터이나, 내 인생 봄날 20대라고 했을 때 봄과 파리는 제법이다. 헤밍웨이의 파리도 봄으로 시작하더라. 허연 털에, 묵직하니 사람 좋아 보이는 할배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작가의 20대는 왠지 어니스트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가난하고 젊은 봄날, ‘화양연화’(옮긴이의 말). 인생 말년에, 그러니까 허연 털에, 묵직하니 사람 좋아 보이는 할배가 되돌아보며 쓴 날씬이 파리 시절 회고록이고 사후에 출간됐단다. 그래서인가, 애달프다.


파리는 참 변하지 않는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2000년대 초반 내가 귀국하던 무렵 전후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정을 떼고 돌아와야 했던 시기여서 나만 심정적으로 그렇게 느낀 건지 실제로 파리가 속물적인 관광도시로 변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들어 불쑥불쑥 생각이 나기도 하는 파리인데 그건 물론 (변했다면 말이지만) 이전의 파리다. 어니스트가 ‘내 도시’를 다시 내게 온전히 돌려준 것도 같다. 느긋하고 여유롭고 발에 채는 게 예술가들이고 적당하게 친밀하고 빵은 신선하고 음식은 맛있고…….


지금은 또 얼마나 변했을지. 작정하면 못 갈 곳도 아닌데 작정해도 못 갈 곳이기도 한 게, 파리는 지구 상 우리와 거의 반대편에 있어 직항으로 열두 시간 남짓 날아가서 도착할 수 있는 공간만이 아니기 때문일 거다. 시간이라는 변수, 아니 상수가, 파리에 살아본 사람들이 파리를 파리라고 불렀을 때 그 파리가 되게 한다. ‘움직이는 축제’말이다.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었던’ 내 봄날 1990년대 후반, 그리고 어니스트의 봄날 1920년대 초반. 그러해서일 거다, 애달프다. 향수다. 그런데 마침 비도 오는 봄밤이다. 술 마시고 있다는 말을 길게도 썼다.
 

“(…)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인생이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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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7/04/09 02:45 # 삭제 답글

    제가 느낀 파리랑은 거리가 먼데 오히려 인용 글이 베를린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베를린 앓이중!!
  • 취한배 2017/04/10 19:01 # 답글

    요즘은 베를린이 예전 파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도시에도 트렌드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리 포 님. 베를린 앓이 수긍 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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