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언제나 옳다 - ![]()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푸른숲 |
단편 하나를 하드커버 제본으로 펴내는 패기, 작가의 이름이 아니면 안 될 거다.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이다. ‘나는 언제나 옳다’ 혹은 ‘The Grownup.’ 전자는 번역제목이고 후자는 원어제목인데 전자는 화자를, 후자는 어린 등장인물을 중심에 둔 제목이려니, 생각했으나 성장은 어린 인물만 하는 게 아니며, 화자가 실제로 훌쩍 성숙하는 (새로운 신분을 얻는) 결말로 보아 적격인 원제로구나, 했다. 조지 R. R. 마틴의 의뢰 선집에 기고할 당시 제목은 ‘무슨 일 하세요?(What do you do?)’였다는데, 그 또한 어울린다. 무슨 일 하세요? -성장하지요. -나는 언제나 옳으니까요. 로 이어지는 궤적 같기도 하고.
(비록 속임수라고는 하나) 심령술사가 등장하여 전형적인 고딕 분위기가 날 즈음 어, 이러면 길리언 플린이 아니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선택이랄지, 결정을 독자에게 쑥 미루며 발을 빼고 작품을 닫아버리는, 혹은 열어버리는 방식이 무척 멋지다.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그 앞으로 옷장을 끌어다놓으면서까지(87) 자신을 단단히 단속하고 바통을 넘기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현대소설’답다고 하면 길리언 플린이 섭섭해 할 것 같고, 길리언 플린답다고 하면 고딕 미스터리에 빚진 게 많을 것 같고. 고딕의 플린 식 현대적 변주쯤이라고 할까.
이후가 오멘으로 이어지든,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이어지든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영리한 작품. 화자는 새로운 ‘신분’을 얻어 난생처음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는 참이고 실재는 알 수 없으나 똘똘함에는 틀림없는 아이는 성장할 것이다. 길리언 플린은 고딕, 오컬트, 미스터리, 스릴러를 조합한 짧은 ‘성장grownup’ 소설로 게으른 독자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단편의 묘미이고, 나는 그게 좋다. 장편으로 가는 여정에 숱하게 직면하여 수도 없이 버렸을 평행우주들, 그 직전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실제로 사기를 당했든 아니든, 나는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수많은 일을 믿도록 했던 나다. 그런 나에게도 이번 일은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참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나 스스로 믿도록 만드는 것! 옳진 않더라도 나름 합리적인 일 아닌가. (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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