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와 수잔, 혹은 녹터널 애니멀스 Smoking

토니와 수잔 - 8점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오픈하우스
 

작가 때문도 아니고 (처음 보는 이름이다) 표지 때문도 아니고 (영화 홍보 겉표지 싫어함+속표지는 멋지다) 영화화한 감독 이름 때문에 냉큼 사 읽은 경우. <싱글맨>의 감성으로 이셔우드를 재발견하게 한 사람이라면 내겐 보증수표다.


소설 속에 토니가 있고 소설 밖에 수잔이 있다. 소설을 쓴 사람은 수잔의 전남편 에드워드다. 소설을 읽는 수잔은 그러니까 전남편을 읽는 셈이다. 토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수잔의 회상과 현재도 함께 펼쳐진다. 작가-독자 간의 미묘한 관계, 독자 안에서 일어나는 심상의 변화나, 독자가 마음속에 짓는 ‘자신만의 흥미로운 건축물과 지도’(177) 같은 것에 톰 포드도 매료되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가 에드워드 뿐 아니라 훌륭한 독자 수잔을 작품 속에 배치해, 오스틴 라이트는 다방면의 읽기를 선사한다. 평생 문학을 가르치고 자신의 글도 써온 작가인 만큼 쓰는 작업과 동격으로 읽는 작업, 읽는 눈의 역할을 작품 속에 넣어, 또 말하지만, 순수문학-장르문학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에드워드가 쓴 <녹터널 애니멀스>는 소위 스릴러이겠는데 오스틴 라이트의 <토니와 수잔>은 ‘고전’이랄까. 출판사도 그렇고 겉표지도 그렇고 해서 수잔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스릴’을 줄곧 기대하며 읽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만.


온갖 갈래로 뻗어가던 상상이 좌절되지는 않는다. 수잔의 현재에서 작가-전남편의 부재는 오히려 독자-우리를 고양한다. 에드워드는 마침내 완성한 작품으로 수잔에게 복수한 것일지도, 수잔에게 다시 작업을 거는 것일지도, 또는 수잔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작가로서의 자기존재를 증명하였다.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 더한 복수로 보이기도 한다. 비평가-독자에 머무르던 수잔이 화자-작가로 독자-우리에게 오지 않았던가.


톰 포드의 선택을 믿는다고는 썼지만 사실, <싱글맨>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녹터널 애니멀스>도 안 볼 것 같다. 원작이 좋으면 내 속에 지어진 ‘건축물’이 훼손될까봐 두려운 까닭이겠다. 최우수 각색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지적이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그냥 내 것으로 보존하고 싶다. 소설 속에 토니가 있고 소설 밖에 수잔이 있다. 토니를 읽는 수잔을 읽는 내가 있다. 토니를 읽는 수잔을 읽는 내가 있다고 하는 리뷰를 읽는 당신이 있다. 화면을 송출하고 있는 슬라이드막을 캠코더가 찍으면 슬라이드막 화면 속에 화면 속에 화면 속에 화면 속에……


책이 끝났다. 수잔은 그녀의 눈앞에서 책이 계속 마지막 챕터, 페이지, 단락, 단어로 줄어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스러졌다. 그 책을 다시 읽거나 부분, 부분을 돌이켜볼 수 있지만, 이제 책은 죽었고 다시는 처음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 책이 남기고 간 틈으로 마치 자유 같은 강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현실이 그녀를 잡으러 다시 돌아오고 있다. (459)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7/01/10 17:07 # 답글

    오~~ 이 책 기대되는데요^^ 마지막 인용 부분 완전 제 취향 저격이에요~!!
  • 취한배 2017/01/10 22:19 #

    그죠. 책을 다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을 저렇게 표현했더라고요. '이제 책은 죽었고.' 크. 책중독자 사다리 님이 좋아하실 만도 하지요!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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