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Smoking

아우구스투스 - 10점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구픽


스토너와는 영 다르겠거니, 염려와 기대를 동시에 했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유명인을 다루었을 뿐이지 존 윌리엄스가 고스란하다. 염려는 날아갔고 기대는 충족됐다. 결국 한 인간을, 인생을, 업적과 상관없이 그 부질없음을, 자기 ‘자신으로 남’(415)은 모습을 보여준다. 원칙과 신념을 지키며 가차 없기도 한 아우구스투스는 스토너의 2천 년 전 버전이라고 해도 될 성 싶다. 그러니까 포부나 이상, 정의감, 성공 같은 말들보다는 ‘운명’이 올 테고, 이 운명이라는 것은 ‘우연’이라는 이름과 바꿔 써도 될 듯해진다.


존 윌리엄스의 인물들은 그저 살았고 제 일을 했고 복수했고 배신당했고 우연히 운명을 받아들였다. 2천여 년 전의 아우구스투스가 그랬고 50여 년 전의 스토너가 그랬다. 스토너와는 시대와 장소가 다르고 형식도 다른데 아우구스투스를 읽었다기보다 존 윌리엄스를 읽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마도 작가의 개성, 색깔인가 보다.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저 유명한 장군 아그리파는, 내가 화가를 꿈꾸던 시절 화실에서 가장 친했던 얼굴이기도 하다. 미대생이라면 수없이 그려 거의 외울 지경이 되는 그 음영(陰影)은, 연필을 들고 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 자신의 얼굴과 닮아 있기 일쑤였다. 글을 쓰는 작가도 비슷한 걸까. 존 윌리엄스가 그리는 인물은 그 자신과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 작위적이지 않고 처연하다.


또 어떠냐 하면, 달관한 사람 같다. 인생의 비밀을 아는 것만 같다. 그이에게서 내가 건져 올린 건, 별 것 아닌 게 ‘별 것’이고, ‘어떻게 살지?’ 그러나 ‘어쩌다 보니’ 하는 순간이 바로 삶이며, 우연들이 운명과 만난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감동. 다시 말하지만, 처연함. 헌사 다음에 실린 작가 노트 중 ‘이 소설에 진실이 있다면, 역사보다는 픽션의 진실이다.’(9)라는 문장에서 ‘진실’의 자리에 ‘감동’을 넣으면 그대로 ‘독자 노트’가 될 수도 있겠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유르스나르 식으로 기억하게 되었다면 아우구스투스는 윌리엄스 식으로 기억하게 되리라. 과작(寡作)이 고맙고 소중한 존 윌리엄스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의미가 없어질수록 세월을 버텨낸 힘에 대해서까지 점점 회의가 든다네. 인간이야 운명을 향해 발버둥 친다지만 신들은 분명 그런 미천한 존재들한테 관심조차 없다네. (…) 그래, 친애하는 니콜라우스, 어쩌면 결국 자네 말이 맞겠어. 신이란 단 하나밖에 없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네는 그 신 이름을 잘못 지었네. 신의 이름은 우연이고 사제는 분명 사람일 거야. (382-383)





덧글

  • 다락방 2017/01/06 17:00 # 삭제 답글

    아, 측근님께서 언급하신 바로 그 이유로 저도 이 책 읽기를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아예 사지도 않았어요. 스토너와는 영 다른, 그런데 어쩐지 그게 좀 실망을 줄 것 같은 염려, 그렇지만 존 윌리암스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 그래서 읽고 싶다고 읽고 싶지 않다가 동시에 싸우는 바람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읽어도 좋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밑에 포스팅에서도 와인 보고 반가워 댓글 남기려다 그냥 갔는데, 여기서 또 와인을 보니까 기분이가 좋아져요... 아하하하하.
    연필과 책, 의도하신 깔맞춤입니까??
  • 취한배 2017/01/06 20:43 #

    그지요, 측근님. 스토너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저도 한참 고민하다가 읽었는데 나중에 남는 느낌이 스토너랑 아주 비슷해요. 존 윌리엄스는 어쩜 이럴까요. 아흑, 좋아요.
    와인와인 기분 좋아져요? 마시다 외출하고 와서 다시 이어 마시고 있어요. 이히히히히+건배.
    저 연필은 책상에 늘 있는 건데 가끔 찬조출연해주십니다, 마침 깔맞춤! 알아봐주셔서 고맙슴미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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