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t no.009 NoSmoking

악스트 Axt 2016.11.12 
악스트 편집부 엮음/은행나무


표지 인물 윤대녕 작가다. 쭉 따라 읽어온 작가가 아니어서 조금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본다. ‘가령, 위악적이고 자폐적인 상태에서는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다고 봐요. 그런 상태가 예술가들의 진지한 모습인 양 관념화된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정신이 왜곡되고 병든 상태에서 하는 얘기를 요즘 세상에 누가 들어주겠습니까.’(044) 떠오르는 이름이 몇 있는데. 처음에는 뭔가 멋지다, 했다가 곧 질린 경우가 내게도 있었다. 최근에는 문단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더라. ‘위악적이고 자폐적인 상태’아니고 ‘타자끼리 아픔이나 고통에 서로 감응하고 개입해야만 비로소 삶의 등치가 가능하지 않겠는가’(039)라고 말하는 윤대녕 작가여서 고맙고 든든하다.


백가흠: 문학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다뤄야 하는 걸까요?
윤대녕: 나보코프의 『롤리타』서문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1920년대인가, 아무튼 그즈음에 프랑스의 한 일간지에 실린 가십 기사를 인용한 대목입니다. 삽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혼자 사는 어느 노화가가 원숭이를 키웠습니다. 아마도 반려동물이었겠죠. 화가는 원숭이에게 그림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원숭이한테 ‘네가 그리고 싶은 걸 한번 그려봐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최초로 그린 그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를 가두고 있는 철창이었습니다. 무엇을 쓸 건인가, 하고 고민할 때마다 저는 그 철창을 떠올립니다. 원숭이에게는 그 철창이 자신에게 가장 절박한 현실이었겠죠.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쓰는 사람의 심정이 절실해야 독자한테도 그 절실함이 전해지게 마련입니다. (052)


crossing꼭지. 작가-번역가 짝 지은 기획이 계속 있을 모양인데 좋다. 이번엔 필립 로스-정영목 쌍이다. 『바다』작가 존 밴빌과의 ‘삼각관계’로부터 풀어가는, 정영목의 필립 로스 ‘옹호론’ 쯤 되려나. 둘을 비교하자면 나는 존 밴빌 쪽 취향이긴 하지만. 자신이 우리말로 옮긴 작가들을 소환해 문학 얘기를 들려주는 장,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런데표지인물로황정은작가는언제 #다음표지밥딜런이면좋겠다고김쫑은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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