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Smoking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 8점
조이스 캐롤 오츠 외 40인 지음, 케이트 번하이머 엮음, 서창렬 옮김/현대문학


동화의 변주라는 판이 깔렸고 작가들의 상상력은 폭발한다. ‘다시 쓰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다시 쓰고 새로 읽으라고 동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아이, 못된 계모, 예쁜 공주, 용맹한 왕자, 사악한 마녀, 인과응보, 권선징악 등의 진부함과는 거리가 멀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페어리fairy는 있는데 페어리 테일fairy tale에서는 멀어진다. 아니면 페어리 테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거나. 다시 말하면, 화사한 환상이라기보다는 끔찍한 환멸에 가까운 판타지. ‘그렇다, 동화는 폭력적이다. 동화에는 상실이 있다. 살인, 근친상간, 굶주림, 부패가 있다.’(27, 머리말, 케이트 번하이머)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는 은유가 아니다. 동화의 특성이 그런 것 같다. 은유의 수사가 오기 훨씬 전의 직접적인 행위. 그냥 이뤄지는 무의식. 누군가 흘렸다는 피눈물이라면, 동화에서는 눈알이 뽑히는 와중에 흘리는 눈물이겠다. 공주는 그 입 조심하라. 어쩌면 은유보다 상징이 난무하는 자리일 수도 있겠다. 곰곰 생각해보니, 직설적이고 화끈해서 나는 동화가 좋은가 보다. 재지 않는다. 에두르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닳고 닳아 두루뭉술하게 윤리만 내세우는 도그마 식 기존 동화를 전복하는 현대적 변주라면 기꺼이 찾아 읽는다. 작품 중에는, 백설공주와 그가 가져올 독사과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비꼬는 단편도 있더라. ‘옛날 옛적, 그분은 사과를 먹고 쓰러지셨다.’(784)


그분의 짙은 남색 머리카락을 보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주 많은 수수께끼, 아주 많은 것들을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책의 마지막 쪽에 가서야 그 약속이, 맨 처음 읽었을 때 그에게 그토록 큰 희망을 주었던 그 말이 나왔다. 그들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분과 난쟁이들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거야, 박사는 생각했다. 그분은 오실 것이고, 오셔서 그가 많은 준비를 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것이다. (784, 킴 아도니지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강조는 원문)


진수성찬이 팀 버튼 영화들 같다. 곧 깨어나리라는 사실을 아는 잠깐의 악몽들. 원작은 잊어버려도 상관없지만 알고 있으면 더 좋으리라. 친절하게도 원작동화 요약이 뒤에 실려 있다. 책이 읽히지 않아서 좀 괴롭고 우울한데 꿈조차 별로 없는 요즘, 자기 전에 한 편씩, 모두가 개성적인 41개의 단편, 총 800여 쪽의 섭섭하지 않은 양이 고맙다. 시국의 화두처럼 ‘얼토당토않다’만, “상상이 주는 위안은 상상의 위안이 아니다.”(36, 막을 올리며, 그레고리 머과이어) 변기공주도, 시녀도, 동화에서나 있어야지 민주주의 공화국 청와대에 있으면 안 되는 거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